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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14. 2020

태국에서 미얀마로 가는 길

열일곱 시간 버스 신세, 집밥이 그리워지는 순간


안녕, 치앙마이!

치앙마이를 떠나는 날. 새벽 알람에 깨어 짐을 챙긴다. 덜 마른 반바지를 비닐 안에 넣고 쪼리는 가장 꺼내기 쉬운 칸에 넣어 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터미널에 도착한 오전 여덟 시, 작은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우유를 산다. 그리고 18번 게이트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을 만난다. 공항보단 기차역이나 터미널에서 더 큰 여행의 즐거움을 찾는 편. 약 20시간 정도 이동하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첫 번째 관문은 난이도 하, 7시간 소요 예정인 메솟행 버스에 오른다.

오전 10:20, 긴팔에 경량 패딩, 담요까지 챙겼는데 이렇게 춥다는 건 에어컨을 낭비하고 있다는 뜻. 버스가 도착하려면 다섯 시간이나 남았는데 추위와 허기가 엄습한다. 그린 버스에서 제공한 물과 빵을 먹는다. 곧 미얀마에 도착할 테니 중간 정산을 하기로 한다. 아주 넉넉하진 않지만 그렇게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항공권 대신 버스 티켓을 끊었으니 10만 원 정도 절약한 셈이다.

오후 두 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정차한 터미널에 내린다. 치킨이 들어간 호빵 두 개와 옥수수맛 과자를 산다. 하지만 주전부리로 허기를 달래는 건 불가능한 일. 아침에 사 온 바나나를 까먹는다. 역시 과일은 늘 옳다. 장거리 버스 이동시 과일을 챙기는 게 가장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매솟 터미널이 보인다.





매솟에서 썽태우를 타면 금세 국경에 도착한다. 한국인은 한시적 무비자이기 때문에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입국 심사장에 들어가 여권을 보여주면 된다. 심사장 안은 아주 좁은데,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체격이 큰 데다 배낭까지 메고 있어서 굉장히 복잡하다. 더위를 감수한 자에게 미야와디로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썽태우에서 만난 야헬은 비자 없이 국경을 넘는 우리를 부러워했다. 괜찮아, 미얀마에 도착하면 다 똑같으니까!

태국과 작별 인사를 하며 우정의 다리를 건넌다.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손을 흔든다. 뜨거운 태양 아래 천천히 걷다 보면 미얀마에 도착한다. 강가 너머로 미야와디가 이어진다. 또 한 번의 과정을 거치고 거리로 나갔을 때, 미얀마 사람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Hello. I’m Mr.Beauty.” 자신의 사무실에 가면 양곤행 버스 티켓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약간의 달러를 환전하고 버스 티켓을 예매한 후에야 여유가 생긴다.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냐고 묻자, 뷰티는 길을 안내해준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볶음밥 두 개를 주문한다. 여행이 주는 감사의 조건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시원한 물 한 모금, 계란과 닭고기가 들어간 맛있는 밥을 먹고.


오후 다섯 시 반쯤 썽태우와 비슷한 차가 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그걸 타고 5분쯤 달렸을까,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작은 건물에 도착한다. 맥주를 마시고 숙면을 취하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이 무산된다. 주위에 그 어떤 가게도 없기 때문. 버스에선 불경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아아.. 쉽게 잠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밤이다.


어서 양곤에 도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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