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시간 동안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양곤
첫 번째 도시, 양곤
새벽 네 시 반. 장장 스무 시간 동안 버스를 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양곤. 모기도 많고 삐끼들도 많다. 한참을 방황하다 처음 만난 아저씨와 거래를 성사시킨다. 거리에는 약간의 불빛과 소음이 있다. 택시에서 내려 감사를 전한다. “째주바” 그는 웃으며 배낭을 건넨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빈. “여기 재즈바가 있다고?”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 양곤의 새벽 거리를 걷는다. 목적지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윌리스 하우스. 샤워와 짐 보관이 가능한지 묻기 위해 온 건데, 직원은 우리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푼다.
덕분에 초췌한 몰골을 면한다. 단장을 마치고 거리로 나온 아침. 보족 시장은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27번 스트릿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푸드 센터에 도착해 푸리와 오믈렛, 이름 모를 음식을 주문한다.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가 담배를 태우셔서 조금 불쾌했지만, 다른 이들도 똑같이 행동하는 걸 보니 이 나라 문화인 듯하다. 어쩌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보족 아웅산 시장 환전소를 돌아보며 환율을 알아본다.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꼼꼼한 남자 친구는 고개를 젓는다. 해서 근처에 있는 큰 건물로 향한다. 정션 시티, 한국의 백화점과 별 다를 게 없는 곳. 4층 환전소에서 200달러를 짯으로 바꾼다. 가난했던 마음이 넉넉해지는 순간. “이제 우리 부자야! 뭐 먹을래?” 과일 아이스크림과 주스를 사고 떡볶이까지 입에 넣는다. 아.. 행복은 이런 게 아닐까?
양곤 중앙역, 200짯을 내면 낡은 순환 열차를 타고 도시를 돌아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건 더위를 견디는 인내와 느긋한 마음. 열차는 칙칙 소리를 내며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린다. 복도에는 귤을 파는 상인들이 알 수 없는 언어를 외치고 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몸을 스치는 오후, 정겨운 풍경들이 천천히 지나간다. 버스에서 밤을 지새운 빈은 금세 잠에 빠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열차는 인세인 역에 정차한다. 인세인 시장에 가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일정을 변경한다. 낡은 나무다리를 건너 작은 마을 구경하기. 하늘에 닿을 것처럼 키가 큰 야자수를 지나 아이들의 목소리가 퍼지는 곳에 멈춰 선다. 그들은 미끄럼틀과 다이빙대가 있는 수영장에서 행복한 여름을 보낸다. 바간에 도착하면 수영장에 가야지, 다짐하며 치즈 웨하스를 입에 넣는다. 이제는 다시 양곤역으로 돌아갈 시간.
서로의 어깨를 빌려 한참을 자다 양곤역에 내린다. 몸을 일으켜 나른함을 쫓는다. 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또 열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고단한 여정. 하지만 어쩐지 이 나라가 마음에 든다. 아이들의 순박한 미소도,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도.
그는 묻는다. 왜 미얀마에 오고 싶었냐고. 나는 말한다.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느린 시간을 경험하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