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아빠의 새로운 시작이자 우리의 전부였지만
큰 상실이 여름을 덮친 1월의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산도 서울도 아닌, 미얀마의 작은 도시 바간에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동생은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텅 빈 목소리에서 한국의 겨울을 더듬었다. 사랑하는 우리 집을,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곳을 떠올리면서. 머나먼 타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날을 보내는 동안, 엄마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했다. 엄마가 불가피한 상황에 놓인 건 아닌지, 혹시 집에서 잠이 든 건 아닌지. 그런 두려움이 작은 소망까지 산산조각 내버렸기 때문에. 머나먼 타국에서 기도했다. 집은 잃어도 좋으니까 제발 엄마만 찾게 해 달라고. 다시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는 동안 해가 저물었다. 짙은 어둠이 길게 이어지던 밤, 화면에 뜨는 글자를 보고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를 찾았다는 말에 감사해서.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이 아주 아주 넉넉해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리운 도시로 향한다. 밤 열한 시의 기차역,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한다. 불이 난 지 열흘이 흘렀다. 엄마는 야위었고 아빠는 말 수가 줄었다. 집 사진이 있냐고 묻자 동생이 입을 연다. “내 머릿속에 다 있는데.” 그러자 아빠는 말한다. “내 기억엔 이미 다 지워졌어.” 동생이 대답한다. “그걸 잊을 수가 있어? 나는 장롱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직도 다 생각나.” 이들의 대화는 마음에 맺혀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해서 나는 우리의 언어를 차곡차곡 모아두기로 했다. 엄마에게 묻는다. 없어진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게 뭐였냐고. “니들 사진.” 그 말은 또 다른 파도가 되어 지난날을 일렁이게 한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과 많은 기억, 깊고 진한 흔적들을.
하루는 차 안에서 목 놓아 울었다.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에, 그녀의 창백한 얼굴빛에 울컥해져서. 엄마를 위해 긍정의 말을 찾았어야 했는데, 눈물을 그치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나아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런 상념들이 온기를 빼앗아가기라도 한 건지, 엄마와 내가 맞잡은 두 손은 오랫동안 차가웠다. 지난여름에 있었던 추락 사고에 이어 화재라니. 일부러 힘을 내고 싶진 않았다. 당분간은 마음이 가는 대로, 시간에 기대어 겨울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참담한 장면만이 우리를 흔들 뿐,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일기장도, 수많은 악보도, 아끼던 원피스까지도. 따뜻했던 안식처는 황량한 모래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까맣게 탄 물건을 치웠다. 엄마는 자주 방황했다. 끼니를 거르거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빠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는 서류를 준비하거나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데 하루를 다 쓰곤 했는데, 아마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꼈을 게 분명하다. 어느 새벽에는 할머니가 아팠다. 그녀의 작은 신음에 아빠와 나는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켰다.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힘든 일은 한꺼번에 몰아쳤다. 동생은 늘 웃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소리 없는 탄식을 뱉었다. 내가 슬펐던 건, ‘집을 잃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재가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무너뜨렸을 뿐이다.
아늑한 안식처를 만난 15년 전을 떠올린다. 우리는 집이 지어지는 동안 늘 나무 냄새를 맡았고, 톱밥 가루를 밟거나 기둥 옆에서 무언가를 먹었다. 아빠의 노력과 정성은 쉼 없이 이어졌고, 예쁜 나무집이 완성되는 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할머니는 정원을 가꾸셨고 엄마는 낯선 공간의 틈을 애정으로 채웠다. 집은 아빠의 새로운 시작이자 우리의 전부였다. 가족들은 여기서 삶의 한 부분을 보냈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고 특별한 날엔 파티를 열고, 또 영화를 보다 잠들기도 하면서.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때를 보냈다. 해서 이 공허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두운 터널을 무슨 방법으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영원 같던 낮과 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행복했던 장면들이 희미해지는 게 두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다시 쓰기로 했다. 엄마를 찾았으니까, 모두 무사하니까. 그 겨울밤을 기적이라 믿기로 했다. 바간의 사원에는 불상 위에 꽃 한 송이가 놓여 있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엎드려 절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간절함을 품고 살아간다. 그게 어떤 것이든, 또 그 마음이 얼마나 크고 작든, 모든 바람과 진실된 눈빛은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집을 잃은 나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긴 것처럼. 사라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제 겨울 너머의 초록빛 숲을 기대해야지. 우리의 정원은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