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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27. 2019

영원의 밤을 염원하는 글

예쁜 골목이나 에그타르트를 잊어도 포르투의 밤은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며.

등대로 가는 500번 버스에 오른다. 자리에 앉은 세 사람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잠에 취했다. 한참을 졸다 깨어 보니 차창 너머로 파란 빛깔이 번졌다. “일어나 봐. 바다에 도착한 것 같아.” 버스에서 내려 바다로 향한다.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는 포르투의 끝에 선다. 한국으로 치면 정동진과 비슷하겠지?






아이들은 모래 위를 뛰어다닌다. 어른들은 햇빛 아래 누워 몸을 태우거나 책을 읽는다. 바위 사이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 바다에 가까워질 때면 몸은 느슨해진다. 신발을 나란히 벗어둔 채 한껏 여유 부린다. 가방에 넣어둔 푸딩과 과자를 집어먹기도 하면서. 사랑스러운 오후, 바위 옆에 놓인 자전거와 기타 치는 남자는 여름의 조각이 되고, 우리는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기로 한다.








다시 돌아온 포르투 시내. 감기 몸살인지, 버스 멀미인.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카페는 안 갈래. 좀 자고 일어나서 전화할게.”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간다. 상비약으로 챙겨 온 타이레놀을 먹고 침대에 눕는다. 다행히 몸상태가 일찍 호전되어 답답한 방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른 저녁, 오빠들을 만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먹물 파스타와 멧돼지 구이, 그리고 머시룸 리조토. 모두 미소 지으며 포크를 든다. 리조토는 맛이 없어서 원호 오빠 혼자 먹긴 했지만. 포르투 와인이 유명하다는 말에 잔을 든다. 그리고 기절.








언덕을 넘어 도착한 동 루이스 다리.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보는 야경이지만 어쩐지 새로웠다. 밤이 주는 감동을 안고 수도원 정상으로 향한다. “벌써 문 닫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흘렀다. “괜찮아. 오늘을 오랫동안 기억하면 돼.” 기억력이 나쁜 머리는 금세 포르투를 잊겠지만, 이 도시의 울림은 마음 깊이 남아 있을 테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환호성이 가득 퍼지는 거리에 멈춰 선다. 축제가 열리기라도 한 걸까. 사람들의 열기와 악기 소리가 밤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느 카페의 야외 테라스. 귀를 자극하는 비틀스 노래가 흘렀다. 아름다운 기타 소리와 감미로운 목소리에 매료되어 그 속에 섞여 울컥해진다. 꿈같은 환상 속에 빠져있던 우리는 무대가 끝나고 한참 후에야 현실로 돌아왔다. “이건 진짜 잊기 힘들겠는데?” 긴 하루의 막을 내린다. 예쁜 골목이나 에그타르트를 잊어도 포르투의 밤은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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