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 필사

지하철 긴자 선의 원숭이의 저주

by 권오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며칠 전 지하철을 탔는데, 바로 건너편 자리에 모녀 사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여자 둘이 앉아 있었다. 둘 다 무릎 위에 감은 백화점의 쇼핑백을 올려놓았고, 얼굴도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심심한 차에 '과연 모녀지간이라 얼굴이 많이 닮았군. 저 딸도 나이가 들면 저런 아줌마가 되겠지' 하고 혼자 감탄하고 혼자 남 득하며 힐끔힐끔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지하철이 아카사카미쓰케 역에 멈추자 나이 많은 여자가 아무 말없이 혼자 짝 내리고 말았다. 요컨대 그 둘은 모녀지간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나란히 앉은 남남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착각을 은근히 자주 한다. 판단력에 결함이 있는 데다(아마 결함이 있을 것이다) 상상력이 자꾸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 모녀지간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두 여자의 실질적인 연관성이 어떻든 상상력이 저 혼자 줄달음치는 것이다. 곤란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그 두 여자가 사실은 모녀지간이 아니었을까란 가능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실은 자신들이 모녀지간이란 걸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가령 그 젊은 딸은 갓난아기일 때 가령 도쿄 올림픽이 열린 해에 숲 속에서 거대 원숭이에게 유괴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딸기를 따 가지고 돌아왔을 때 갓난아기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조그만 털모자와 원숭이 털만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이십이 년이 지났다. 딸은 여덟 살 때까지 원숭이의 손에 자랐지만, 그 후에는 마을로 나와 촌장의 집에 살면서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 오늘은 긴자의 마쓰야 백화점에 후추를 담을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러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딸이 죽었다고 믿고 있기에, 지하철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자기 딸인 줄 알아채지 못한다.


원숭이의 저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화면 캡처 2023-04-26 18362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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