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와 참기름을 넣고 달달 볶는다. 소고기의 붉은 기가 덜 보일 정도로 볶으면 마늘을 듬뿍 넣고 물을 붓는다. 그리고 푹 끓인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참치액을 넣었다. 간을 본 다음 소금을 더 넣어 맛을 맞춘다.
쉽다면 쉬운 미역국을 나는 항상 맛있게 끓이지 못한다. 미역 비린내가 날 때가 있고 국물이 진하지 않기도 해서 어떨 때는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작업을 미역국 끓이기에 도전했다. 미역을 충분히 불렸고 소고기도 다양한 부위를 평소보다 갑절 넣었다. 그리고 한 번도 넣어보지 않았던 참치액도 넣었다.
세상에~ 어떤 재료가 화학작용을 했는지 정말 맛있다. 푹 끓여 진하게 우려낸 국물, 부들부들하면서 미역 비린내도 안 나고 해서 엄청 큰 양으로 끓였던 게 다행인지 모른다. 매끼 국으로 식탁 위에 올려놓지만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평소에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끓였던 미역국에 대한 다른 방법이 꽤 나름 만족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까? 글쓰기와 미역국 끓이기와는 연관이 없지만 왠지 서로 연관성을 찾아보면서 웃곤 한다. 나는 평소에 미역을 제대로 불리지 않고 바로 시도했다. 충분히 바락바락 씻어 미역 비린내를 없애버리지 않고 얼른 냄비 속으로 투하했다. 나의 설익은 글감이 그런 모습일까? 글감 하나 생각하여 바로 노트북으로 글쓰기로 진입하지만 더 이상 속력이 나지 않는다. 이 글감을 마음대로 요리를 못해 반짝이는 글감이 시들시들한 평범한 재료로 쓰이게 되었다
소고기 양은 어떻게 연관이 있을까? 음~ 생각해 보니 나는 떠오르는 글감하나만을 가지고 글쓰기를 할 때가 있다. 나머지는 다른 날에 써야지 하면서 절대로 여러 개 글감의 융합을 용납지 않았다. 아니, 비루한 글감 양으로 다른 날의 글쓰기 할 때 글감부족으로 글쓰기를 할 수 없는 게 싫어서일 수 있다. 글감의 발견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갖고 있는 한정된 글감을 쪼개어 나누기만 해서 미적지근한 글쓰기만 생산하지 않았을까?
소고기를 평소보다 다량으로 그것도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섞어 넣어서 다시는 재생산이 나오지 않을 맛있는 미역국이 되었다.
참치액의 쓰임은 어떨까? 평소 나의 글쓰기에서는 뻔하게 썼던 어휘와 일상어, 표현력에서만 머물렀었다.
그리고 새로운 모험은 결과물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두려워 회피하기만 했었다. 즉. 자기 복제의 글쓰기로 귀결되는 결과를 볼 때마다 자괴감도 들었지만 방법을 몰라했다. 정여울 작가의 책에서 이런 말이 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묘책이 있을까요?
-어쩌면 글이 안 써진다라는 현상은 내 안의 더 깊은 나와의 만남이기도 해요. 글만 쓰지 말고 글을 쓰면서 더 좋은 삶을 살라고, 글을 쓰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제 안에서 속삭이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갖기도 해요. '
-정여울[끝까지 쓰는 용기]
이 문장이 나의 반복되는 패턴의 글쓰기에 해결책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단순하고 익숙한 미역국을 끓이다가 평소에 하지 않았던 방법을 쓰면서 글쓰기와 연관 짓는 것은 평소에 답답한 글쓰기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은 나의 비루한 욕망임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