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엔 상식과 경제를 많이 알아서 냉철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진심 어린 공감이나 위로 한 마디를 못 해주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갑자기 급경련과 반복된 구토 증상을 보이는 아빠를 데리고 새벽에 응급실을 찾았다. 실신 증상을 겪어 다양한 검사를 받았고, 장 기능이 거의 멈춰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백신 주사를 맞은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더 불안했고 무서웠다. 인터넷에는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글을 읽을수록 무서워졌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이 모인 카카오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가 지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무서워서 엄마는 백신 주사 맞는 걸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백신 주사를 맞는 건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지만, 맞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 '걱정이 지나치게 많아 오버하는 사람' 등으로 약간의 압박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완전한 자유로운 선택은 아니다. 그래서 혹시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불안한데도 억지로 그냥 맞으려는 친구들이 있는지 물어봤고, 그러한 마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때 그중에 한 친구가 말했다.
"백신 주사는 자유로운 선택이야. 내 주변엔 안 맞은 사람들이 더 많아. 국가가 강요한 적 없음 ㅋㅋㅋ 안 맞는다고 아무도 뭐라 안 해."
그 친구는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굳이 우리 아빠가 아파서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 괜찮으셔?'라는 단 한마디의 안부인사 없이 본인의 의견을 웃으면서 표현해야 했을까.
나는 그 친구의 반응이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물어봤다. 왜 내가 한 이야기에 위로 한 마디도 없이 본인의 의견만 이야기하는지. 그러자 또 한 번의 웃음을 터뜨리고 아무 말도 없는 그 친구의 반응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그냥 친구의 연을 끊었다.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내가 한 이야기가 그 친구가 믿는 신념에 반대되는 이야기라 거슬렸던 걸까. 뭐가 됐든 나는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는 친구의 정을 나눌 수 없었다. 사실 심리학 모임에서 만났던 친구라 더 공통점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득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가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혹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도움을 받고자 심리학 모임에 들어온 건 아닐까? 그러한 얄팍한 호기심과 혹시 내가 친구를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물어봤다. 결국 내 생각과 달랐지만.
혹시 심리학 모임은 어쩌다 들어오게 된 거야? 나는 내 멘탈 관리하려고 들어왔는데.
- 나 그냥 별 목적 없어. 그냥 재밌어 보여서.
지금 다행히 아빠의 건강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안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 친구에게 받은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평소 똑똑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장점이 무정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인간관계는 늘 어렵다. 개개인의 성향과 의견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다른 의견을 서로에게 자유롭게 표출해도 되지만, 상대가 처한 상황에 맞는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사람다운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