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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빛 Jan 10. 2021

9일 만에 집 밖으로 나가봤다.

오랜만에 나가 본 바깥세상


9일 만에 나가 본 바깥세상



  지난달, 퇴사를 하자마자 한파가 찾아왔다.

그리고 코로나는 여전히 심각해서 약속도 다 취소하고 9일 동안 집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매일 전철에 끼여  출. 퇴근을 하던 지난달과 달리 집 안에만 있으니 낯설었. 하지만 재택근무로 사업 일을 하고 카카오톡으로 매일 수다도 떨고 넷플릭스를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집 안에서 본 바깥의 세상은 실감 나지 않았다. '폭설과 영하 20도에 가까운 매서운 추위' TV와 인터넷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을 뿐,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 얼마나 추운 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창문 밖을 보니 펑펑 내린 눈이 쌓고 아이들은 나와서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웠고 사람 사는 세상 같았다. 반대로 나는 다음날 빙판길에 사고가 많이 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눈이 오면 설렘보다 걱정이 먼저 생각나면 늙었다고 하던데, 나도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그렇게 집 안에서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전해 듣던 9일의 기록은 오늘 깨졌다.


  대단한 계기는 아니었다. 단지 오랜만에 호빵을 쪄 먹으려고 했는데 찜기가 없었다. 그래서 부엌 수납장 이곳저곳을 열어 보다가 정작 찜기는 못 찾고 뜻밖의 물건을 찾아냈다. 예전에 사뒀던 다이어트 제품이었다. 구석에 아무도 몰래 남아있던 '1+1으로 사서 씰도 뜯지 않은 새 제품' , 하마터면 유통기한을 넘겨 세상의 빛도 못 보고 바로 버려질 뻔 한 제품이어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지금 나는 그 제품으로 다이어트를 할 생각은 없어서 오랜만에 중고거래 어플 'ㄷㄱ마켓'에 올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인기가 많은 제품이라 그런지 연락은 빠르게 왔다. 바로 우리 집 근처에서 거래를 하기로 했고, 나는 본의 아니게 준비를 하고 바로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밖에 아직도 한파라고 하는데 많이 추우려나?'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거라 고민하다 대충 얇은 트레이닝복에 패딩을 걸쳤다.


그리고 9일 만에 열어본 현관문.

생각보다 춥지 않고 무척 상쾌했다. 집 안에 있다가 밖에 나간 거지만, 오히려 세상 밖에 있다가 드디어 세상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적당히 부는 겨울바람이 상쾌했고, 눈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스쳐가는 사람들이 그냥 반가웠다.


그렇게 중고 거래를 마치고 그냥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워서 잠깐 바깥바람을 쐬다 집에 들어왔다.




  


  나는 앞으로도 재택근무를 해서 당분간 나갈 일이 없다. 메신저로 친구들과 소통하고 sns와 TV, 인터넷으로 세상을 간접적으로 접하지만 직접 겪은 바깥공기는 전해 들은 것과는 달랐다. 마 오늘도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더 집 안에서만 살고 있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쩌면 금방 마음이 시들해지고 우울감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집순이여서 9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바깥에 나와 햇빛을 쬐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일부터는 30분씩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려고 한다. 예전처럼 여행을 가거나 밖에서 마음껏 편하게 놀지는 못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산책을 하는 외출도 내겐 너무 소중하다.

  바깥에 나가는 게 조심스러워진 요즘, 쉽게 나가던 예전이 너무나 그립다. 비대면 언택트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바깥의 공기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늘이었다. 정작 찜기는 찾지 못했지만, 잃어버린 물건이 잃어버린 바깥세상에 대한 감정을 찾아줬다. 비대면시대로 지금 잠시 사람들과 단절되고 간접접촉이 많아졌지만, 예전의 아날로그적 만남의 감성을 잊지말고 기억해야겠다.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예전처럼 편하게 만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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