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함께 있는 마음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누르지도 않는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오늘따라 하루가 길게 느껴지던 오후,
문득 책꽂이 속 『우리들이 사랑하는 세계의 명시 365』가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아무 곳이나 펼쳤는데 그곳에 ‘나의 어머니’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15년 전, 처음 이 시를 알게 되었다.
그날 남편이 이 시를 읽다가 몰래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나비보다 더 가벼운 몸으로 떠난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서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많이 그립지? 나도 그 마음 알 것 같아.”
그때 나는 위로인 줄 알고 그렇게 말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 말이 충분히 닿았는지는 자신이 없다.
엄마를 잃어본 적 없는 내가, 그 마음을 정말 헤아릴 수 있었을까.
몇 년 전, 나 역시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남편의 그때 그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상실과 슬픔을 마주한 이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 마음 충분히 알겠어요.”
“저도 그 심정 이해해요.”
대부분은 진심 어린 마음에서 나온 말이지만,
때로는 그 말이 오히려 예상치 못한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고통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깊이 공감하려 해도,
그 슬픔의 온도와 무게는 경험한 사람만이 온전히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습관처럼 말로 위로를 전한다.
아마 그 말 한마디가
고통 속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믿음은 어느새 인간의 본능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당신 마음을 잘 알아요”라는 말 대신,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곁에 있고 싶어요.”라고 표현해본다면
고통 속에 있는 이에게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아픔을 모두 이해한다고 확신하기보다,
모든 걸 다 알 수 없다는 겸손함과
그저 곁에 있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이
오히려 슬픔 속에 있는 이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국에,
자식들과 눈 한 번 맞추지 못한 채
민들레 홀씨보다 더 가볍게 날아가 버린
엄마가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그리움은 불쑥, 특별한 순간에 더욱 깊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