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부로 살아가는 방식

-된장찌개는 식고, 마음은 끓고-

by 앨리스킴


[우리의 속도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부부로 살아가는 방식>

-된장찌개는 식고, 마음은 끓고-




“오늘 나 좀 늦을 것 같아.”

저녁 약속이 있다며 나서는 남편의 말에,

이제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래, 잘 다녀와.”


결혼 초엔 그 말이 왠지 서운하게 들렸는데,

지금은 그저 각자의 하루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인사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게 이제는 익숙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사소한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괜히 토라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에 앞서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서로를 오래 겪다 보니

굳이 큰소리를 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지금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신혼 시절의 우리는 참 많이 서툴렀어요.


된장찌개를 몇 번이나 다시 데우며

속을 끓이던 어느 밤도 그 시절 중 하나였죠.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문득,

그날 밤의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신혼은 이미 지나 있었고,

그렇다고 서로에게 완전히 익숙해지기엔 아직 서툴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애매한 틈에서 우리는 자주 엇갈렸고,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툭, 하고 부딪히곤 했죠.

그즈음,

두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하루가 전쟁 같던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날도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올려놓고,

현관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전화 한 통 없고,

삐삐를 쳐도 감감무소식이더라고요.


벌써 몇 번이나 데운 찌개는

이미 졸아들었고,

저는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현관문만 뚫어져라 바라봤어요.


사실, 된장찌개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기다림은 점점 화로 바뀌어 갔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아이 둘을 돌보느라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저는

남편과 얼른 교대하는 게 간절했죠


그땐 휴대전화도 없었고,

삐삐에 남긴 메시지를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남편은 회식이 잦았고,

‘집에 자주 전화하는 사람은 공처가’라는

어이없는 직장 분위기 속에서

그저 슬쩍 묻어가며 지내는 듯했습니다.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딱 한마디면 됐을 텐데요.

그날따라 남편의 무심함이 유독 얄미웠습니다.


밤 10시, 11시, 자정을 넘겨 새벽 2시.

분노가 슬슬 걱정으로 바뀌고,

‘제발 별 탈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그즈음에

드디어 현관문이 열렸어요.


비틀비틀 들어온 남편의 입에서는

알코올 냄새가 풀풀 새어 나오고,

“ㅇㅇㅇ 사랑해~”

눈은 풀리고 발음은 꼬였는데,

뜬금없는 사랑 고백(?)이 시작됐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 와중에 사랑 타령이라니요.


평소엔

“꼭 말로 해야 아냐?”라며 낯간지럽다던 사람이,

그날은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사랑해’ 라는 말만 되풀이했죠.

듣고 있자니, 어이없다가도 괜히 웃음이 나더군요.


‘지금 그게 할 소리야?‘

한바탕 퍼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양복도 벗지 않은 채 대자로 뻗어

코까지 골고 있는 사람한테 화를 내봤자 허공에 주먹질이더라고요.


뭐랄까… 싸움도 상대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이미 한쪽은 완전히 다운된 상태고,

저만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 맥이 풀려버렸달까요.


그날의 결론은,

보기 좋게 제 KO패였습니다.



너무 분해서,

그날 밤 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결국 생각해 낸 게,

‘그래, 나도 한번 사라져 주자.’

어이없게도, 유치한 복수 플랜이었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아이들 우유를 타놓고,

“나 찾지 마”라는 쪽지 한 장 던져두고는

살며시 집을 나섰어요


그날은 토요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쉬는 날은 아니어서 남편은 회사에 가야 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당황할 남편 모습을 혼자 상상하며

살짝 통쾌해졌죠.



막상 집을 나오니 마땅히 갈 데가 없더라고요.

집 근처 도서관은 아직 문을 안 열었고,

요즘 같은 카페 문화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결국 동네 공원을 몇 바퀴 돌다

일찍 문을 연 병원을 찾아갔죠.

미뤄둔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대기자가 많아 병원에서 시간을 채우고

근처 백화점으로 갔습니다

억울한 기분을 쇼핑으로 풀어보자는 심산이었죠.


‘남편 카드로 마구 긁어보자!’

분한 마음에 씩씩거리며 백화점을 누볐어요.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지치고, 배도 고파지고…

무엇보다 아이들 생각이 자꾸 났어요.

‘애들 우유는 먹였을까, 아직 낮잠 자고 있을까…’

그런 생각에 발걸음이 저절로 집으로 향하더라고요.


겨우 집에 돌아와 쇼핑백을 풀어보는데,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안엔, 남편 옷. 아이들 옷.

정작 제 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무리 화가 나고 속상해도,

제 안에는 여전히 가족이 전부였다는 걸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말없이 제 눈치를 살피던 남편이

툭 던진 한마디, “밥 먹자.” 무뚝뚝한 그 말이,

그날의 유일한 휴전 제안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녁 식사는

조용하고 평온하게 마무리되었고—

작고 유치한 전투도 그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건,

때론 뚝배기보다 더 뜨겁고,

또 그만큼 쉽게 식어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매번,

다시 불 위에 올려 데우는 것-

그게 사랑 아닐까요.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작은 마음 하나가 지켜내는 거더라고요.


툭하면 토라지고, 또 툭하면 풀리고.

아무 일 아닌 듯 밥 차리고,

괜히 말 한번 걸고, 웃다 보면

또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렇게 또,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게 우리 부부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