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함께 살아가는 나라다.
종교도, 언어도, 생활 방식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면
갈등이 더 잦을 법도 한데,
막상 마주한 그곳의 공기는 차분했다.
어쩌면 이 나라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이미 전제로 삼고 살아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방식이 있다는 걸
조용히 인정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나 외국인에게도
배타적인 느낌은 없었다.
특별히 환대하지도 않지만,
굳이 밀어내지도 않는 거리감.
그 정도의 온도가 오히려 편안했다.
생활 전반에는
속도를 재촉하지 않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어느 날 저녁 무렵,
딸이 머물고 있는 집에서
갑자기 전기가 나간 적이 있었다.
오피스에 연락했더니
담당자는 이미 퇴근했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연락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전기가 나갔다는 사실도
큰일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마음이 바빠진 쪽은 우리였다.
다행히 간단한 문제라
차단기를 올려 직접 해결했지만,
그때 문득 알 것 같았다.
이 나라에서는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이
그리 큰 불편이 되지 않는다는 걸.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가면
대부분 여러 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밥을 먹고,
그 자리에서 차나 커피까지 마신다.
밥 따로, 커피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요즘 우리나라 물가를 떠올리면,
이곳에서의 밥 한 끼는
생각보다 부담이 적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여기서는 망설임 없이 오가는 것 같았다.
음식도 그랬다.
말레이 음식 같기도 하고,
중국 음식 같기도 하고,
인도 향신료가 섞인 듯한 메뉴들.
처음엔 정체성이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곧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바로 이 나라의 정체성이구나.
여러 문화가 섞여 살아온 시간만큼
음식도 그렇게 섞여 있었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국적을 물었다.
자국민과 외국인의 입장료는 달랐다.
자국민에게는 아주 저렴했고,
외국인에게는 몇 배쯤 더 비쌌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괜히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곱씹어 보니
이 차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을 바라보는 감각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공공은 모두에게 동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공공을 대하는 기준이
조금 달라 보였다.
문화유산은
먼저 이 나라 사람들의 것이고,
외국인은 잠시 들른 손님에 가깝다.
그 기준이 불편하다기보다는
생각보다 솔직해서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나라의 질서는
정확함이나 속도보다는
사람의 감정과 리듬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사람을 먼저 두는 기준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장면들 속에
이미 스며들여 있었다.
특히 ‘기다림’과 ‘속도’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 도시는
내가 알던 질서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