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다 보니, 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의 속도로 살아갑니다]
<함께라는 시간>
-천천히 걷다 보니, 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 말이 살짝 서운했지만,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나이 들수록 꽃이 더 예뻐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유를 천천히 걸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원이나 산책길을 걷다 보면,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제법 나이 든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 든 증거라더니, 정말 그렇네요.”
언제부턴가 저 역시 꽃을 보면 반사적으로 휴대폰부터 꺼내 들게 됩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마음에
사진으로라도 꼭 남기고 싶어 집니다.
그 마음엔 아마도,
그냥 지나치기엔 마음 한편에 자꾸 머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왜일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시 ‘꽃’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뒤늦게 떠오르는 젊음의 기억.
그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던 찬란함이, 지나고 나니 더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어른들이 종종 하시던 말이 생각나네요.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우리를 보며,
빈말이 아니었단 걸 이제는 알겠습니다.
요즘은 그 말을 제가 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렇게나 고무줄 하나로만 질끈 묶어 올린 헤어스타일에도
충분히 멋스러운 요즘 아이들을 보면 참 풋풋하고 예쁩니다.
그 자체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은 모르겠지요.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화사하게 피어난 꽃인지를.
생각해 보면, 저도 그랬습니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그저 그 모습 그대로 충분히 빛났다는 걸—
그렇게 반짝이던 시절이었단 걸,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남편과 함께 아침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앞서 걷던 남편이 자주 멈춰 섭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던 꽃을 핸드폰에 담느라 바쁜 모습이 우습기도 하네요.
약간 놀리듯 물었더니,
기특한 대답을 하네요.
속도를 늦추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시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작고 사소한 것을 예쁘게 보는 눈은
더 밝아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미처 못 보고 지나친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뭐가 그리 바빠 숨 가쁘게 달려왔는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치고, 조급해하고,
마치 세상이 끝난 듯 절망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지요.
그 모든 일들이 결국은 지나가는 것들이었다는 걸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그저 예쁘고 화려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그 안에 깃든 시간과 이야기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꽃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그 속에 담긴 고단한 여정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마치 한 사람이 살아낸 평생의 시간처럼요.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모진 계절을 견뎌낸 끝에 피어난 꽃 한 송이.
그 모든 과정을 지나왔음을 알기에,
그 모습은 단지 ‘예뻐서’가 아니라, 참 ‘기특해서’ 더 마음이 갑니다.
문득, 그 꽃에게 그렇게 말을 걸고 싶어 지네요
그 마음을 오래전에 누군가도 품었나 봅니다.
노래 ‘친구야 너는 아니?’의 가사를 따라 부르다
이 노랫말이 이해인 수녀님의 시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시를 알고 난 뒤로는
꽃을 바라보는 눈길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그 노랫말을 떠올리며 가만히 꽃을 들여다보면,
그저 피어난 꽃은 하나도 없고,
예쁘지 않은 꽃도 하나 없습니다
화려하든, 수수하든, 크든 작든…
요즘 부쩍 꽃 사진을 찍어 보내는 남편 덕분에 제 갤러리가 온통 꽃밭이 되었어요
사진을 보고 있으면,
꽃을 담던 그 순간의 마음까지 전해오는 것 같아
오늘 하루가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이른 봄,
그 말에 무심하던 남편이 요즘은 먼저 꽃과 눈을 맞춥니다
참 고마운 변화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풍경이 되었어요
가까이서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슷해 보여도 하나같이 제 각각입니다
피는 시기, 모양, 색감까지… 저마다 제 방식으로 피어납니다.
덕분에 자세히 보느라 걸음이 느려지고,
덩달아 마음도 여유로워집니다.
꽃 앞에 머무는 이 조용한 시간이,
삶을 다정하게 껴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 주인공입니다
마음도 따라 머물렀습니다>
< 햇살이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환하게 피었어요. 노란 금계국>. <수줍게 웃음 짓는 마가렛>
<종 모양의 꽃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어요. 병꽃나무>. <가까이 다가가면 은은한 향기도 납니다. 고광나무 꽃>
<노랑붓꽃(창포꽃). 물가 근처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아이예요> <귀티 나는 보랏빛이 고요한 자태를 뽐냅니다. 보라색 붓꽃(아이리스)>
<알리움. 보라색 작은 꽃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조명처럼 반짝이는 듯해요.>. < 장미. 어디서 피어도 단번에 시선을 끄는 꽃이에요>
산책길에서 만난 꽃들을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눈으로만 담기엔, 너무 빨리 스쳐갈 것 같아 그 순간의 마음까지 함께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