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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Nov 30. 2020

혈압 200, 태도불량이나 검진결과 우수함.

사랑아, 오래오래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살자

우리 집 강아지 사랑이가 이제 정말 잘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까이 가서 부르면 돌아보고, 우리가 말하면 알아듣고 서로 소통이 되었다. 이젠 아무리 불러도, 말을 해도 눈만 멀뚱멀뚱하다 눈치로 알아채는 것 같았다. 갑자기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랑이의 마음이 어떨까? 사랑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울적하다.    


노화 현상이라고 한다.

연령 대비 다른 강아지에 비해 늦은 경우라고 한다. 다행히 다른 증상은 없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증상들이 염려되어 종합 건강검진을 하기로 하였다. 남편은 큰 종합병원으로 가자고 하였지만, 건강검진의 스트레스도 힘든데 장소와 사람마저 낯설면 사랑이가 더 힘들 것 같아서 평소에 다니는 병원을 가기로 하였다. 사랑이의 편안함이 제일 우선이다.  

  


검사 당일, 2시에 검사라 새벽에 일찍 먹고 아침을 주지 않았다.

사료며 간식을 주지 않으니 사랑이로서는 어리둥절한 일이다. 소변을 받아야 하는데 밥을 안 주니 물도 안 먹고 소변도 보지 않는다. 조퇴하고 내가 집에 가니 칭찬 듣고 까까를 얻어먹을 생각에 얼른 쉬를 한다. 겨우 소변을 받았다. 그래도 까까를 주지 않으니 사랑이의 기분은 별로다.   

 

사랑이가 낌새를 채 버렸다.

동물병원에 내려놓자마자 집에 가자고 난리, 처음으로 병원 바닥에 응가와 쉬를 싼다. 집에서는 응가를 피해 다니는 놈이 흥분에서 응가를 밟아버렸다. 아프지 않게, 스트레스받지 않게 친절하게 잘해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원장님께 안긴 사랑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찾는다. 사랑이도 나도 힘들다.    


2시간이면 된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기다리다 못해 병원으로 가는 중 전화가 왔다. 사랑이가 너무 비협조적이라 검사가 길어지고 있단다. 원장님도 힘드시겠고 사랑이도 힘들 텐데 걱정이 되었다.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그렇게 긴 시간을 동물병원에 혼자 있던 경험이 없는 사랑이는 각종 검사로 지친 몸을 바닥에 엎드린 채로 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하고 좋아서 벌떡 일어났다. 내 얼굴을 핥으며 정신을 못 차린다. 찬 바닥에 엎드려 엄마를 기다리던 그 마음이 안쓰럽고 예뻤다.

   

“어쩜 이렇게 관리를 잘하셨어요?”

“이렇게 피가 맑은 강아지는 첨이예요.”

 습관성인 슬개골 탈골만 있을 뿐 사랑이의 건강검진 결과는 매우 좋았다.   

  

7년 전 검진에서 피가 탁하다는 결과를 듣고 그 후로 시판 간식을 끊었다.

닭가슴살 육포는 직접 만들어 먹였고 사랑이가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 위주로 간식을 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눈, 관절, 피부, 모질 등 각각에 알맞은 사료 및 영양제 등을 챙겨 먹이고 매달 병원에 다녔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가벼이 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사랑이를 기르는데 정성을 들였다. 그런 마음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 정말 감사하다.    


“그런데, 10번을 재도 혈압이 200이에요.”

스트레스와 긴장 탓에 혈압이 너무 높게 나왔다고, 피가 맑은데 이렇게 높은 수치가 나올 수가 없다며 다음 진료 때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시 혈압을 측정하기로 했다. 사랑이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문제가 된 것이다.     


“어머, 저도 그랬어요. 죄송해요. 사랑이가 저를 닮았나 봐요.”

몇 해 전, 갑상선 물혹의 조직검사 결과를 듣던 날, 너무 떨리고 긴장한 탓에 내 인생 최고의 혈압이 나왔었다. 사랑이도 그만큼 힘들었구나. 어떻게든 사랑이와 엮이고 싶은 마음에 나는 그것마저 나를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 모전犬전이라며 좋아했다.   

 

사랑이의 건강검진 결과는 

“혈압 200, 태도 불량이나 검진 결과 매우 우수함”

청력도 조금 남아있어 센 자극에는 반응하니 사랑이와 좀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사랑이는 내 어깨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평소와 다른 옹알이를 한다.

“ 나만 두고 왜 이제 왔어요? 엄마 없어서 힘들었어요.”

다행이다. 잘했다 하며 사랑이를 쓰다듬는다. 

안아주려는 아빠의 손길을 살며시 거절하는 사랑이의 발길질이 사랑이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낸다.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남편과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로감이 밀려온다.

사랑이의 건강검진 걱정, 혼자서 힘들 사랑이의 마음 걱정이 꽤 컸던 모양이다.

너무 피곤하여 일찍 잠들었다. 무엇보다 사랑이가 건강하다니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고단한 사랑이도 코를 골며 잘 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사랑아, 앞으로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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