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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Sep 15. 2021

동물병원 앞 동상이몽

벙원 앞 100미터 전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갔지만 내겐 너무 가혹한 기억이 된 백일 맞이 배냇 털밀이 사건  이후로 동물병원은 가기 싫은 곳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성화 수술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심장사상충 예방을 위해 가게 되면서 싫어하는 곳의 사람들의 얼굴도 낯이 익게 되었다. 아가견인 나를 위해 겁내지 않게, 아프지 않게 해 주려 다정하게 말하고 애를 써주시지만 그래도 동물병원은 싫다.


싫어도 가야 하는 곳이 동물병원이다.

어떤 친구들은 병원 문 앞에서 발버둥을 치기도 하고 12살이라는 어떤 형아는 병원이 보이는 골목에 들어서면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못 한다고 했다. 싫어하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가는 이유가 있을 테니 나는 엄마가 가자고 하면 반항(?)하지 않고 따랐다. 그래도 동물병원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콩닥콩닥, 몸이 떨리며 겁이 나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진짜 속마음은 동물병원 앞 100미터 전, 도망치고 싶다.


"사랑이 보호자님! 참 고마워요."

"사랑이를 입양해서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다른 강아지들보다 씬 더 사랑받은 티가 팍팍 나요, "

"사랑 듬뿍 받고 자라서 이렇게 순하게 치료받고 보호자와의 관계도 바람직해요."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울고불고 물어뜯는 진상 고객들에 비해 훨씬 쉬운 고객인 사랑이 덕에 내가 칭찬을 받았다.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민망하다.

혼자 집에 있게 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저 마음으로 품었고, 내 자식이 되었으니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보듬은 것뿐인데 사랑이가 잘 받아들여줘서 주위의 모두가 편하게 되어 고마울 뿐이다.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동물병원에 익숙해졌는지 한 달에 한 번 검진하러 갈 때도 사랑이는 평온하다. 사람 어른인 나도 주사를 맞기 전의 떨리는 긴장감이 정말 싫은데 아가견인 사랑이는 어찌 이리 의젓한지 대견하고 고맙다. 진상 고객의 견주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것도 은근히 좋다.


동물병원 앞 100미터 전, 걱정이 덜어지니 나의 발걸음도 전보다 한결 가벼워졌다.


" 사랑아, 오늘은 벙원에 가도 주사 안 맞아. 의사 선생님이 사랑이 진찰하고 약만 받으면 돼. 괜찮지?"

엄마의 목소리에 전보다 걱정이 덜하다.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진상 고객짓은 안 하지만 그래도 나는 벙원이 싫다.

그런데 엄마는 주사 잘 맞고 울지 않는 것만 보고 나를 대견하게 여기고 짠한 마음으로 위로를 해주긴 하나 진짜 내 마음을 읽지 못한다.


' 솔직히 정말 무섭고 싫다구요.

 사랑아, 벙원 가자는 말, 긴장 100

 벙원 가는 길, 긴장 200

 벙원 입구, 떨림 300

 벙원 냄새, 겁남 400

 엄마 품에서 원장님 품으로 옮겨질 때, 무서움 1000

 그다음은 상상 이상이라구요.'


동물병원은 엄마와 나의 유일한 동상이몽이다.

다른 건 다 엄마와 완전히 같은 마음이니 다행이고 감사하다.

세월이 지나다 보면 무디어지고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그래도,

아직은,

엄마는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지만,

동물병원 앞 100미터 전에서 발걸음을 뭉그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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