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누군가는 다녀갔다
오늘 드디어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웠다. 거실 한 편을 큼직하게 차지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볼 때마다 치워야지 생각만 하며 귀찮음에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크리스마스는 참 유별났다. 크리스마스 전날, 남편은 아이가 아직도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다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곧 6학년이 되는 아이가 그런 걸 믿을 리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슬쩍 떠보았을 때, 아이는 분명히 산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남편은 결국 아이에게 대놓고 말해버렸다.
“산타 할아버지는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두 손으로 아빠를 치며 원망 섞인 외침을 뱉어냈다.
“그런 말 하지 마! 산타 할아버지는 분명히 오실 거야!”
그날 밤, 아이는 식탁 위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고급 초콜릿과 우유 한 컵을 정성스레 두고 방으로 올라갔다. 밤사이 산타 할아버지가 오셔서 드실 거라면서 말이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는 한참을 흐느꼈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 역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사실 올해도 아이 몰래 트리 밑에 선물을 가져다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이가 고른 선물은 미국 아마존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이었는데, 판매자의 출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크리스마스까지 도착하지 못 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크리스마스 당일에 사실대로 말해주려던 참이었는데, 남편이 일을 이렇게 키워버릴 줄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지 않은 걸 확인하면, 아이가 얼마나 절망할까.’
이런저런 걱정으로 뒤척이던 중,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여름 오키나와 여행 때였다.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는 개구리 모양의 나무 목탁을 무척이나 갖고 싶어 했다. 가격이 이만원 가까이 되어, 나중에 사주겠다며 아이를 달래 데리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돌아와 온라인에서 오천원에 주문한 목탁은 ‘나중에 깜짝 선물로 주자’는 생각으로 창고 깊숙이 숨겨두었었다. 그 목탁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이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아이의 숨소리가 깊어졌을 즈음, 나는 조심스레 창고로 향했다. 목탁을 꺼내 정성껏 포장하고, 아이가 놓아둔 우유를 마시고 초콜릿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선물을 트리 밑에 내려놓고 침대로 돌아오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새벽, 어슴푸레 잠이 깬 아이는 스프링처럼 발딱 일어나 트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어!”
아이는 트리 밑 선물만 본 게 아니었다. 식탁으로 달려가 우유가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 초콜릿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자 눈이 더 크게 반짝였다.
“진짜 다녀가셨어!”
아이는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것을 산타 할아버지가 알고 계셨다며 한없이 행복해했다. 자기를 위해 멀리 오키나와까지 가서 목탁을 사 오신 게 분명하다며 들뜬 얼굴로 말하는 아이 앞에서, 남편은 끝내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사실 산타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선물을 준비하고, 그 기적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우리 집에는 앞으로도 매년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