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멈추면 생활이 멈추는 곳에서
9월쯤이었던 것 같다. 커브가 심한 길을 돌다 계기판에 엔진오일 경고등이 들어왔다. 운전을 시작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엔진오일 경고등을 본 건 처음이었다. 놀란 마음에 급한 볼일을 마치고 곧바로 자동차 공업소로 향했다. 사장님은 엔진오일이 거의 바닥이라며 오일 체크용 꼬챙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정말로 끝에 겨우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차량 관리다. 차가 없으면 슈퍼마켓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는 없고,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번뿐이다. 차계부까지 적으며 엔진오일 교체를 해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장님은 주행거리가 10만 킬로를 넘기면 엔진오일을 많이 먹는 차들도 있다며, 자주만 확인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놀란 마음을 달래주듯 잠시 앉았다 가라며 믹스커피를 타 주셨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두 달이 흘렀다. 11월, 자동차 검사를 받으러 갔다. 얼마 전 공업소에서 점검을 받았기에 아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사소 직원이 엔진오일이 너무 없다며 또다시 꼬챙이를 들이밀었다. 평균보다 훨씬 아래였다. 두 달 전에 가득 채워 넣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시 공업소로 가자 사장님은 내 차는 그럴 수 있다며 우선 오일을 채워 주고 타 보자고 했다.
12월 말, 지방으로 장거리 운전을 할 일이 생겨 혹시나 싶어 집에서 엔진오일을 확인해 보았다. 이럴 수가. 얼마 전 채웠는데 또 정상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공업소에 가서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우선 오일을 채워 넣고 다녀온 뒤 다시 보자고 했다. 오일이 조금 부족하다고 당장 차가 멈추는 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믿고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다시 공업소에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 또다시 커브를 도는 순간 엔진오일 경고등이 켜졌다. 오일을 채운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말이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꼬챙이 끝에도 오일이 묻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차가 크게 망가진 건 아닐까. 수리가 안 되면 어쩌지. 차를 새로 사는 문제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마음을 가다듬고 공업사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우선 차를 가지고 와 보라는 말씀이었다. 혹시 몰라 집에 사 두었던 엔진오일 한 통을 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일이 없는 상태로 공업소까지 가다 엔진이 망가질까 봐서였다.
본네트를 열고 오일 주입구를 열어 부었는데, 무거운 통을 좁은 구멍에 맞추다 보니 옆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깔때기를 썼어야 했는데, 땅은 순식간에 오일로 흥건해졌다.
‘아, 망했다. 어떡하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쨌든 차를 몰고 공업소로 갔다. 오일이 흘러내린 차를 보며 사장님은, 엔진오일을 넣으려고 한 건 잘한 거라며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아마 곧 울 것 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오일이 너무 흥건해 당장은 어디가 문제인지 알기 어렵다며, 주변이 좀 말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엔진오일 수치만 정상으로 맞춰 두고 목요일에 다시 보자고 했다. 오일이 샌다고 해서 차가 갑자기 멈추지는 않는다는 말도 다시 들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엔진오일만 안 쏟았어도 바로 고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왜 그랬을까.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혹시 내일 아침 시동이 안 걸리면? 아이 학교는 어떻게 가지? 그날부터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다음번에 다시 시동이 걸릴지 걱정뿐이었다.
드디어 목요일 아침. 차에 올라 시동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문제없이 시동이 걸렸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장 공업소로 향했다. 차 상태를 본 사장님은 며칠 사이에도 오일이 꽤 줄었다고 했다. 차를 들어 올려 하부를 확인하던 사장님이 말했다. 엔진 커버가 깨져 있었고, 그 틈으로 오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일 새는 곳을 찾기 어려울 거라던 사장님의 예측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사장님은 공업소를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내가 차를 잘못 관리한 게 아니라 부품 불량 같다고 말했다.
수리비는 적지 않았지만, 작업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지금 우리 집 주차장에는 오일이 새지 않는 멀쩡한 차가 서 있다. 공업사 사장님의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내 관리 소홀이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시골살이는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다. 고라니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폭설에 고립될 수도 있고, 멀쩡하던 엔진 커버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길은 있고, 고쳐줄 사람도 있다. 믹스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르쳐준 사장님 덕분에, 나도 이제 예기치 못한 고장쯤은 웃으며 넘길 줄 아는 진정한 시골인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