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씨의 사료투정

사료보다 단단한 고집에 대하여

by dearMe

2년 전 가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남편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다. 동생같이 키운 강아지 '바카'가 떠나간 지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제 새로운 식구를 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도 동물을 좋아하지만, 오래 키운 바카를 보낸 후유증 때문인지 다시는 이별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망설였다.

남편은 보호소에 가서 구경만 해보자며 나를 끌고 갔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구경만 한다는 건, 결코 구경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셋이 들어갔다가 넷이 되어 나왔다. 그렇게 한 살 먹은 웰시코기 '토리'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토리가 그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땐 산책을 안 좋아해 밖에 나오면 자꾸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계단이나 데크길을 처음 보이는지 무서워했던 걸 보면 줄곧 실내에서만 자랐던 모양이다. 사료도 가려 먹었다. 여러 제품을 시도하다가, 겨우 정착한 건 사료 포장지에 자기와 똑같이 생긴 웰시코기가 그려진 제품이었다. 그 뒤론 그 사료만 먹였다. 그런데 며칠 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그만 사료를 미리 주문하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서둘러 주문하려 보니 평소 먹던 제품이 로켓배송에서 빠져 있었다. 일반 배송은 주말을 넘겨야 할 것 같아 초조해진 나는, 후기가 좋고 성분도 괜찮아 보이는 다른 사료를 급히 주문했다. 다행히 사료는 기존 사료가 똑 떨어지기 직전 도착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 터졌다.

그날은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과 피자를 만들어 저녁을 먹고, 어둑해진 시골길로 산책을 나섰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넘어질까 살피랴, 토리 목줄을 잡으랴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토리는 당연히 뒷전이었다. 녀석이 원하는 스팟에서 냄새를 맡게 해 줄 여유도 없었다. 앞서가는 아이들을 따라오지 못하는 토리를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밤 9시가 넘어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토리 저녁을 챙겨주고는 번개같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사료 그릇 앞에 멈춰 섰다. 토리가 새 사료를 단 한 톨도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10kg이나 되는 사료 포대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 산책도 제대로 못 시켜준 미안함과, 배가 고플 텐데도 사료 투정을 부리는 녀석에 대한 괘씸함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했다. 바카였다면 뭘 줘도 잘 먹었을 텐데.




지인들에게 물으니 대답은 하나였다. 배고프면 다 먹게 되어 있으니 굶겨보라는 것. 나 역시 산책을 실컷 시켜 허기지게 만들면 먹겠지,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토요일, 한 시간을 산책시켰다.


'내일 아침이면 그릇이 비어 있겠지.'

하지만 일요일 아침, 사료는 그대로였다. 이번엔 두 시간을 산책시켰다. 평소엔 중간에 공원에서 쉬는 동안 간식을 줬지만, 그날은 물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밤늦게 귀가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배고파서라도 안 먹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녀석은 지독하리만큼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웰시코기가 개 중에서 유일하게 소를 모는 종이라더니, '소고집을 꺾는 웰시코기 고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도 이틀을 굶으면 뭐든 먹을 텐데, 이 작은 동물의 지조가 이토록 대단할 줄이야. 이틀을 굶어 토리의 배는 납작해졌지만, 녀석의 눈빛만은 여전히 꼿꼿했다.



결국 남편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평소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던 사람조차 이 정도 고집이면 인정해 줘야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오기보다 녀석을 더 굶길 수 없다는 걱정이 앞섰다. 결국 원래 먹던 사료를 다시 주문했다.

토리는 내가 키워본 개 중에 가장 영리하고, 또 그만큼 영악하다. 오죽했으면 토리가 조금만 멍청했으면 같이 살기 편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겨울에 춥다고 옷을 입히면 내가 안 볼 때마다 찢어버려 결국 옷 입히기를 포기하게 만든 녀석이다. 예전에 동네 수의사 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토리가 고집이 보통이 아니네요. 전에 파양 된 건 아마 이 영리하고 고집 센 성격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제 가족인데. 허허."

말 안 들어 골치 아프고 속상할 때도 많지만,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한 식구다. 가끔은 녀석이 스스로를 사람이라 생각하며 '왜 나를 침대에서 안 재워주냐, 왜 사람 음식을 안 주냐'라고 눈으로 따지는 것 같아 움찔하기도 한다.

진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저 꺾이지 않는 고집으로 꽤 대단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토리야, 어쩌겠니. 네가 개로 태어난 것을. 그리고 내가 너의 엄마가 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