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막대기

아이와 내가 함께 들어간 비밀의 숲

by dearMe

얼마 전 해리포터 영화 정주행을 마친 아이는 마법 지팡이에 푹 빠졌다. 집에 있는 막대기란 막대기는 모조리 찾아 꺼내 휘두르며 “윙가르디움 레비오사”를 외쳤다. 해리포터의 열혈 팬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사실 이 장면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성급하게 아이에게 해리포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아이보다 내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때 아이는 영화 자체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마법 지팡이에는 단번에 매료되었다. 막대기만 보이면 들고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당시 아이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숲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원장님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자주 가던 숲 가운데에는 성당에서 관리하는 성지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자물쇠로 잠겨 있어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들 눈에는 그야말로 비밀의 숲처럼 울창한 장소였을 것이다.

어느 날, 하원시키러 갔을 때 아이는 집에 가기 전에 그 비밀의 숲에 꼭 들렀다 가야 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낮에 숲에 갔다가 ‘완벽한 막대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차에 가지고 타면 안 된다고 하셔서 잘 숨겨 두었는데, 지금 당장 가지러 가야 한다며 아이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알겠다며 집에 가는 길에 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숲은 평소에 문이 닫혀 있었고,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관리인만 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닫힌 문 앞에서, 곧 완벽한 막대기를 손에 쥘 줄 알았던 아이의 얼굴은 금세 울상으로 변했다. 여기까지 온 나 역시 빈손으로 돌아가려니 아쉬움이 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망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따라가 보았다. 작은 개울이 있었고, 조금만 걸으면 얕은 곳을 통해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걸어가자 개울 옆 경사진 부분에 철망이 없는 곳이 나타났다. 마침 가을이라 경사로는 낙엽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크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아이에게 같이 가볼까 물었더니, 막대기를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의 작은 모험이 시작됐다. 낙엽 더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살짝 덮여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낙엽은 사실 허벅지 깊이까지 쌓여 있었다. 균형을 잃은 우리는 부둥켜안은 채 낙엽 더미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바닥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괜찮은지부터 확인했다. 낙엽이 폭신했던 덕분인지, 놀랍게도 우리는 다친 곳 하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일단 여기까지 들어온 김에 개울을 따라 어린이집에서 놀던 잔디 광장 쪽으로 올라갔다. 길이 아니었던 곳이라 우리는 수풀을 헤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마침내 아이는 광장 옆 구석진 곳에 숨겨 두었던 ‘완벽한 막대기’를 찾아냈다. 아이 말대로 막대기는 아주 곧고 예뻤다. 나무껍질이 완전히 벗겨져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어, 아이들이 탐낼 만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들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경사로를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서로 밀고 당기며 간신히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차에 타기 전,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테이블 위에 막대기를 올려두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성공을 자축했다. 우리의 작은 모험은 그렇게 무사히 끝났다.




요즘 아이가 지팡이를 휘두를 때면, 문득 그날의 숲과 낙엽, 그리고 하얗고 완벽했던, 아이에게는 분명 마법의 지팡이였을 그 막대기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