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지 않아도 충분했던 시간들
친구가 여행을 앞두고 큰마음을 먹고 카메라를 샀다며 보여주었다. 요즘은 사진을 거의 휴대폰으로만 찍다 보니, 카메라를 직접 보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꺼내 보인 카메라를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거, 내 옛날 카메라랑 똑같이 생겼잖아."
내 말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쓰던 카메라의 최신 버전인데, 이 시리즈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어 후속 모델이 계속 나오고 있고, 중고 가격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문득 창고에 방치해 둔 내 카메라가 떠올랐다. 나도 그 카메라를 다시 꺼내 사진을 찍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어딘가 묘하게, 요즘 사진들과는 다른 아날로그 감성이 있었다.
창고에서 카메라를 꺼내니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예상대로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다. 십 년 가까이 넣어둔 전자기기였으니, 다시 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조심스레 먼지를 닦아낸 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는 마치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화면을 켰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화면에는 십 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찍어 두었던 사진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세상과 이어지는 창은 점점 작은 화면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난 SNS를 참 열심히 했다.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찍기 위해 귀찮은 줄도 모르고 같은 피사체를 이리 찍고 저리 찍었다. 그때의 나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눌러주는 ‘좋아요’에 지독히 중독되어 있었다.
좋아요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았고, 평소라면 만들지 않았을 복잡한 레시피의 음식도 일부러 만들어 먹었다. 사진 속에서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감각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내가 움직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SNS는 폭발적으로 커졌고, 덜 상업적인 내 사진들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피드 속에 묻혀버렸다. 조금씩 줄어드는 좋아요에 마음이 상했다. 그게 뭐라고, 그랬을까.
어느 날 아침, 나는 SNS 계정을 비공개로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카메라를 내려놓고 지낸 십 년은 역설적이게도 내 삶이 가장 고요하고 단단해진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피드에 남기지 않으면 일상이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렌즈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직접 마주한 세상이 더 많은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는 식기 전에 먹어야 가장 맛있었고, 창가에 스미는 햇살은 사진에 담기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했다.
누군가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보여지는 나'가 아닌 '존재하는 나'로 사는 법을 익혀갔다. 카메라 화면 속 십 년 전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의 나는 참 애쓰며 살고 있었다. 그 애틋한 노력들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야 비로소 카메라를 도구가 아닌 내 눈의 확장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햇살이 가득 들어온 거실을 천천히 훑었다. 먼지가 빛을 받아 금가루처럼 부서지는 평범한 오후였다.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풍경에 카메라를 가져다 댔다.
"찰칵"
가벼운 셔터 소리와 함께 담긴 풍경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