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위에 올려두었던 투명한 물건에 대하여
친구가 생일 선물이라며 상자를 쓱 내밀었다. 정말 쓸데없는 걸 샀다면서 말이다. 궁금해서 상자를 열어보니 투명한 책 모양의 문진이 들어 있었다.
“오, 예쁜데?”
나는 그 문진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책 위에 투명한 문진을 올려두니 햇빛이 가장자리에서 갈라져 종이 위에 맑게 고였다. 그 순간 책은 읽는 물건이 아니라, 바라보는 물건이 되었다.
“이렇게 좋은데 왜 쓸모가 없어?”
내 질문에 친구는 한 번 써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 했다. 사실은 본인이 갖고 싶어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 생일을 핑계로 두 개를 샀단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역시나 잘 안 쓰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난 잘 써봐야지' 다짐하며 문진을 집으로 데려왔다.
다음 날, 책을 읽으려고 문진을 올려두는 순간 친구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글자가 빽빽한 성경책이나 전공 서적을 읽는 게 아니라면, 이 문진은 정말 쓸 데가 없었다. 무엇보다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 불편했다.
문진의 무게는 마치 『수학의 정석』 한 권을 통째로 드는 것 같았다. 빠르게 책장을 넘겨야 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기엔 세상 번거로운 물건이었다. 친구가 괜히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구나 싶어, 결국 문진은 구석에 처박힌 채 잊혔다.
이번 달, 브런치에서 독서 챌린지를 시작했다. 원래 매일 책을 읽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매번 읽은 부분을 인증샷으로 남겨야 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 할 때마다 책장이 자꾸만 스르르 넘어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예쁜 쓰레기' 같았던 그 문진이 떠올랐다.
다시 꺼낸 문진을 책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사진이 유난히 근사하게 나왔다. 쓸모없다고 여겼던 물건도,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날, 어쩌면 나 역시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딱 맞는 자리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