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싶었던 건, 누구였을까
남편이 컴퓨터공학과에 간 이유는 단순했다. 컴공과에 가면 엄마가 성능 좋은 컴퓨터를 사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은 그 컴퓨터로 게임을 할 생각뿐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오락실을 드나들었다는 시어머니의 증언은 연애 때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 그 밑에서 아이도 자연스럽게 ‘게임돌이’로 자랐다. 다섯 살 때부터 무릎에 앉혀 마인크래프트를 가르쳤다. 글씨도 채 익히지 못한 아이가 게임을 할 때면 나는 옆에 앉아 글자를 읽어주곤 했다. 그런 조기 교육 덕분인지 아이는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그래도 철칙은 있었다. 아빠는 절대 핸드폰 게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빠에게 직접 배우다 보니 아이는 아빠가 좋아하는 레트로 게임을 주로 익혔다. 잠깐 로블록스 광풍에 빠진적도 있었지만, 금세 싫증을 내고 다시 레트로로 돌아왔다.
문제는 작년 가을, 아빠가 '스트리트 파이터'를 보여주면서 시작됐다. 사실 남편은 평소에도 승부욕이 꽤 강한 편이다. 어떤 일이든 승부가 걸리면 적당히 하는 법 없이 늘 진심을 다하곤 했다. 그런 아빠의 열정을 그대로 물려받아서일까. 눈이 초롱초롱 빛나며 캐릭터에 빙의해 신나게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져든 끝에, ‘스트리트 파이터 6’와 전용 조이스틱을 합쳐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이기까지 했다.
"직접 번 돈만 게임에 쓸 수 있다”는 규칙 때문에 아이는 매일 강아지 변을 치우고 밥을 주고 청소기를 돌리며 100원, 200원씩 모았다. 일주일 용돈 5,000원에 심부름값을 보태 두 달 만에 간신히 손에 넣은 보물이었다. 100원에서 500원 하는 심부름값을 벌겠다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선하다.
그렇게 장만한 세트는 아이에게 최고의 보물이었다. 게임은 주말에만 허락됐고, 주말마다 둘은 소리를 지르며 대전을 펼쳤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남편은 아들을 한 명의 당당한 게이머로 인정했기에 결코 봐주는 법이 없었지만, 어릴 적 소근육 발달이 더뎌 실력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반대로 아이는 소근육 발달이 좋은 데다 피아노까지 꾸준히 쳐서 손놀림이 빨랐다. 아이는 금세 아빠를 추월했다.
어느 일요일 밤, 결국 사건이 벌어졌다. 둘이 신나게 게임하길래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거실이 갑자기 너무 조용했다. 나가보니 아빠는 TV 앞에 앉아 있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 방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아이는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가만히 안아주자 아이는 내 품에서 더 크게 흐느꼈다. 한참 뒤 마음이 가라앉은 아이가 말했다. 5연패를 한 아빠가 점점 분해하는 게 느껴져 일부러 한 판을 져줬는데, 아빠는 왜 일부러 지냐며 제대로 플레이하라고 더 화를 냈다는 것이다.
“이겨도 뭐라고 하고, 져도 뭐라고 해요. 엄마, 난 어떻게 해야 해요?”
아이는 억울함에 다시 눈물을 쏟았다. 아빠 역시 아들에게 진 것도 분한데, 심지어 아이가 자신을 배려해 일부러 져줬다는 사실에 게이머로서의 자존심이 상했는지 혼자 씩씩대고 있었다.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차가운 일요일 밤이었다.
그런데 다음 주 주말, 아빠는 아이를 앉혀두고 갑자기 새로운 게임을 설치했다. 그리고 주말 내내 강의를 시작했다. “이건 내가 30년을 플레이했고 전략 시뮬레이션이라 쉽게 못 이길 거다.” 아빠 말대로 아이는 스타크래프트의 전략 세계에 빠져들었다. 연습장을 빽빽하게 채우며 빌드와 전략을 공부했다.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나면서, 아이는 간간이 아빠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게임은 팀전으로 합을 맞출 수 있어, 아이 점수가 더 높아도 아빠가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이제 두 사람은 적이 되어 싸우는 대신, 같은 화면을 보며 머리를 맞대고 승리를 설계한다.
두 게임보이가 나란히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 소리가 오늘은 싸움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 소음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평온한 주말을 보낸다.
아이는 게임을 배웠지만, 나는 그날 어른이 늘 정답 위에 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도 함께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