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불편함에 대하여
주택에 살면 계절의 변화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자연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산다는 기분이 든다. 모든 계절이 나름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겨울은 가장 혹독하다. 한 해 한 해 살아보니 나름의 노하우도 쌓여, 이제 겨울이 아주 두렵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던 첫해 겨울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동파 피해를 겪었다.
처음으로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던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도가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침, 주택에서 겨울을 난다는 게 이런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 집을 지었을 때는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우물을 팠는데, 우물이 얼어버린 것이었다. 그 일을 겪은 후,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켜지는 열선을 우물 안에 설치해 두었다. 이후로는 얼어붙는 사태는 없었다.
난방은 지열 보일러를 설치했다. 초기 비용은 꽤 비쌌지만, 가장 추운 달에도 전기세가 20만 원 안팎이라 3년만 살면 본전은 뽑겠다는 계산이 섰다. 문제는 지열 보일러가 30평대까지만 커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우리 집은 그보다 넓고 창문도 많은 구조라 건축사는 기름보일러를 추가로 설치하자고 권했다. 하지만 보일러 두 개를 관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조금 춥더라도 보일러 하나로 버텨보자고 마음먹었다. 대신 부족한 온기를 채우기 위해 화목난로를 들였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에 화목난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 옆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장면만 떠올렸지, 난로 관리가 이렇게 귀찮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라이터만 켜면 불이 붙을 줄 알았는데, 나무에 불을 붙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재를 치우고 연기를 조절하는 일은 물론, 추위를 뚫고 수시로 장작을 나르는 일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장작은 조금씩 살 수 없어 한 번에 트럭으로 들여와야 한다. 이것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너무 오래 쌓아두면 나무가 잘 타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이 끝날 무렵 딱 맞춰 다 쓰고, 다음 겨울이 시작될 즈음 새로 들이는 것이 가장 좋다. 불을 붙이고 나무를 관리하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영하 10도를 훌쩍 넘기는 날이면 난로 없는 우리 집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난로를 피우면 거실은 금세 훈훈해진다. 그래도 아파트처럼 반팔 차림으로 지내지는 못한다. 집 안에서도 두툼한 옷은 기본이고, 양털 양말은 내 겨울의 단짝이다.
낮에는 난로를 피우면 버틸 만하지만, 밤사이 불이 꺼지고 공기가 식으면 진짜 추위가 시작된다. 이사 초기에는 몰랐는데, ‘난방텐트’라는 존재를 알게 된 뒤 바로 구매했다. 처음엔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새벽녘 코끝이 서늘해지며 잠에서 깨던 기억을 떠올리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막상 써보니 전혀 답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늑해서 잠이 더 잘 왔다. 영하 10도로 떨어지는 날에도 텐트 안 공기는 포근해서, 지금은 겨울마다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겨울엔 밖에 세워둔 차도 얼어붙는다. 앞유리에 덮개를 씌워두지 않으면 성에를 녹이느라 진이 빠진다. 다행히 요즘 차들은 앱으로 미리 시동을 켜는 기능이 있어 한결 편해졌다. 집 안에서 미리 시동을 걸어 성에를 녹여두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한 달 사용료 5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서비스다.
주택 겨울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눈이다. 차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곳이라 눈이 오면 집 앞부터 치워야 한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눈 치우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한겨울에도 두툼한 패딩 안에서 땀이 흐르고, 장갑 안 손이 젖을 때까지 빗자루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애써 치워도 눈이 너무 많이 와, 결국 고립되는 날도 있다.
눈만 오면 또 갇히게 될까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쌓여가는 눈을 보며 엉덩이춤을 춘다. 우리 집 마당은 동네 고양이와 아이만 들어올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기에, 아이는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소리 지르며 굴러다닌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한다. 실컷 놀고 나면 눈 치우는 엄마를 거들어주는 건 덤이다.
눈에 갇히고 하루치 체력이 눈 삽질로 사라지는 날도 있지만,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았을 때 햇살에 반짝이는 눈과 그 위를 지칠 때까지 뛰어노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 모든 고생을 잊게 된다. 이 맛에 주택에 산다. 조금 춥고 번거롭지만, 계절을 잊고 사는 대신 겨울은 본래 추운 계절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 수 있어 좋다. 나는 올겨울도 이 ‘기분 좋은 불편함’ 속에 머물기를 기꺼이 선택한다.
주택의 겨울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있기에 봄을 맞이하는 기쁨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