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과 사라짐에 관하여

집 앞에서 만난 아주 작은 생의 흔적

by dearMe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늘 강아지 토리를 데리고 집 근처를 산책한다. 토리에게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우리에게는 걷기 운동을 겸한 일상이다. 십 년 넘게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사계절의 얼굴이 또렷하다. 봄이면 꽃길이 되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길이 된다. 가을에는 단풍길, 겨울에는 눈길이다. 이 길에서는 종종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을 만난다. 정말 뜻밖의 손님들이다.




어느 봄날, 아이와 손을 잡고 걷다가 길 한가운데 누워 있는 고라니를 발견했다. 차에 치여 죽은 듯했다. 갑작스러운 장면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도 말을 잃고 고라니를 바라봤다. 다음 생에서는 더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집에 가서 삽을 들고 와 치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갔을 땐 이미 누군가가 길옆으로 옮겨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얼굴 모를 그 친절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여름이 되자 푸른 잎사귀와 함께 벌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옆에 놓였던 고라니 사체에도 벌레가 몰려들었고, 불과 보름 만에 살은 사라지고 뼈만 남았다. 햇볕에 씻긴 듯 하얗게 드러난 뼈는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표본 같았다. 아이는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었고, 한동안 산책을 할 때마다 그 자리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 자리는 죽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 한가운데였다.

그렇게 죽음이 지나간 자리마다, 여름 특유의 생명력이 들끓기 시작한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풀과 벌레 말고도 산책길에는 생명들이 부쩍 늘어난다. 특히 밤 산책을 나가면 개구리와 도롱뇽, 사슴벌레와 달팽이를 자주 만난다. 가끔은 뱀이 길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도랑에는 민물새우와 송사리 떼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여름밤 만난 친구들


가을이 되면 떨어진 은행잎 사이로 열매를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게 된다. 실수로 밟는 날에는 한동안 신발에 밴 은행 냄새를 견뎌야 한다. 가을밤 산책길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감상할 수 있고, 어둠을 틈타 길 위로 올라와 부지런히 달리는 땅강아지를 마주치기도 한다.

겨울에는 눈을 밟으며 걷는다. 시골길은 눈이 내리면 금방 녹지 않아, 1월 중순부터는 다음 해 봄까지 눈이 남아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에 남은 동물 발자국을 구경하는 것도 산책의 재미다. 우리 동네에서는 고양이 발자국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고라니다. 토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유독 특이한 흔적이 남는다. 발자국 사이사이에 슥슥 쓸린 자국이 있는데, 다리가 짧은 웰시코기라 배가 눈 위를 스치며 지나간 흔적이다.

가끔은 늘 걷던 길을 벗어나 호수까지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에 쌓인 눈을 바라보고 철새들을 구경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하늘을 가르는 매의 위용을 보기도 한다.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 십 년 넘게 살며, 나는 이제 볼 것은 다 봤다고 믿고 있었다. 그날 전까지는.

얼마 전 산책을 나가다 길 한가운데 떨어진 하얀 솜뭉치를 발견했다. 누군가 장갑을 떨어뜨린 줄 알고 집어 들려던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옆에서 함께 보던 아이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비명을 듣고 남편이 달려왔다. 평소라면 별일 아니라며 넘길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남편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누군가의 발이었다. 하얗고 뽀송한 털에, 작고 말랑한 핑크색 젤리를 가진 발. 아기 고양이의 앞발이었을 것이다. 나는 끝내 자세히 보지 못했다. 남편은 삽을 들고 와 그것을 뒷마당에 묻어주었다. 고양이의 발이었을 거라고, 짧게 말했다.

심장이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 작은 발이 우리 집 앞 도로에 떨어져 있었을까.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우리는 아마 매가 물고 가다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이유를 다 알 필요는 없었다. 그 작은 발 하나로도, 세상이 얼마나 조용히 생명을 오가게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그 작은 발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저릿했다. 하늘 위엔 여전히 매가 날고, 땅 아래선 또 다른 생명이 자라난다.




조용하다고 믿었던 산책길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 길은 오늘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의 얼굴을 말없이 내 앞에 놓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