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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May 11. 2018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질감의 정원'

言の葉の庭 2013 - 신카이 마코토




일본 영화를 보면 종종 '소설적이다'는 생각이 든다. 카모메 식당에서도 겪은 적이 있지만 조금 멍한 초점을 가진(꼭 버스 창밖을 보며 말하는 듯한) 오프닝의 무덤덤한 일본어 내레이션은 어쩐지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오히려 소설의 문법인데, 일본 영화에서는 그런 소설적 느낌을 일부러 살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문고본'이라는 단어 역시 일본적으로 익숙한 느낌이 드는 단어인데, 그런 걸 보면 소설과 정서적으로 참 친숙한 나라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비쥬얼 노벨'이라는 장르를 고안한 것도 일본이거니와, <언어의 정원>을 일종의 비쥬얼 노벨(게임과는 다른)으로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해도 카메라가 머무는 장면들의 의도는 '묘사'에 치중된 경우가 많다. 소설이라면 구구절절 글로 적었을 풍경 묘사들이 화려한 색감의(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독보적인) 그림과,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로 대체되어 있다. 비가 오는 공원의 싱그러운 녹색 식물들과, 비를 피하는 작은 정원 정자에서 부드러운 종이 위를 스치는 흑연 연필의 기분 좋은 소리. <언어의 정원>의 그런 묘사들은 영상물의 정체성보단 오히려 소설적 표현의 영상적 번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왜일까. 


예외 공간


타카오와 유키노가 만나는 공원의 정원. 그들이 만나기 위해서는 비가 온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비'란 모두가 함께 겪는 이벤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하루, 한 손은 우산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하고, 시계와 상관 없이 어두운 하늘, 어딘가 항상 젖은 상태의 옷, 좀 더 축축한 발걸음. 굳건한 일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그들은 핑계가 필요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담긴 그 공간은 예외적인, 그러나 바로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일상이 아닌 드물게 있는 상태를 무대로 벌어지는 일. 역시 익숙한 소설적 문법이 아닐까.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공간의 정서에 충실하기 때문인데, 어쨌든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곳에서 마주친 두 사람'이란 식상한 설정에도 여전히 그 정원의 정자가 마음에 드는 것은 이러한 예외 공간이 언제나 지니고 있는 매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질감


<언어의 정원>이 서사적으로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건전한 소년만화적 클리셰의 전형을 따라가는 이 이야기는 주인공인 소년 타카오가, 성인 여성인 유키노의 개인적인 아픔을, 구두 제작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치유 혹은 위로를 한다, 라는 문법으로 구성된다. 일본 만화를 자주 본 사람이라면 식상한 구성이다. 당장 떠오르는 요리만화들만 보더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머리 짧고 착한 순둥이 소년 주인공이란 설정까지 그대로.) 물론 그런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게 구두 제작이라는 매개가 직접적인 치유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 이용되며 원경으로 물러나긴 하지만, '당신이 나를 붙잡는다면 나는...'하는 식의 시를 넌지시 인용한 밀당(?)이라든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어!'라며 안겨서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이라든지, 서사는 다소 낯간지러운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아무래도 질감 쪽에 있다. 질감의 측면에서 보자면 '구두'라는 소재는 식상함이 아니라 굉장히 매력적인 존재로 바뀐다. 몇몇 옛 이야기에서, 구두라는 사물이 등장할 때 왠지 모르게 들던 즐거움이 기억난다(구두장이를 돕는 요정이라든지). 빳빳한 가죽이 가죽용 칼로 부드럽게 잘리는 모습, 절로 떠오르는 기분 좋은 가죽의  냄새, '구두'라는 단어의 쫄깃한 어감. 뿐만 아니라 기분 좋은 빗소리, 기분 좋은 나무 도마 위 칼질 소리 등 <언어의 정원>은 기분 좋은 감각이란 감각은 모조리 다 동원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눈을 즐겁게 하는 최상급의 작화는 말할 것도 없다. <감각의 정원>으로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애니메이션의 관심은 실은 그런 곳에 다 가 있다. 물론 그것 만으로도 볼거리, 들을거리는 충분하지만.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


아직 '사랑', 인지는 모르겠다. 예외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해프닝이고, 막 무언가 시작되려는 계기가, 혹은 그걸로 그냥 끝나도 좋을 이야기, 그래서 그 이전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실컷 울고 다시 밝게 웃는 주인공들과 무언가를 기약하는 듯한 뉘앙스의 엔딩 장면을 건전하게 다 보여주는 것보다, 좀 더 앞에서 장면을 끊거나 다른 미래를 보여줬으면 여운이 더 깊었을까나. 무언가 해소되어 버린 것이 주인공들의 응어리가 아니라 내 여운인 것 같아서, 그게 조금 아쉬운 느낌이다. 








- 인상 깊은 음식은 역시 맥주와 초콜릿(메이지도 아닌 웨이지). 하지만 별로 먹어 보고 싶은 조합은 아닌 것 같은데...


- 사실 이 애니메이션의 목적은 풋 페티시가 아닐까. 사람을 볼 때 발부터 훑는 카메라의 시선도 심상치 않고, 선생님의 발을 턱턱 잡는 학생의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구두 만들기 따위 다 핑계였던 것.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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