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투자를 외면한 이유
"상급지 이사 실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재개발 빌라 투자 실패"
투자에 흥미를 잃고 일에만 몰두했었던 이유는 어쩌면 부모님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투자 이야기는 위의 세 단어로 압축된다. 분명 부모님도 재테크의 필요성을 느껴 노력하셨을 것이고, 수많은 기대와 시도를 거듭하셨지만, 결과는 늘 어딘가 허무하게 끝이 났다.
부모님은 결혼 후 미술학원과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며 그만할 때마다 꽤 쏠쏠한 권리금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러다 안정적인 직장을 잡으신 아버지 덕에 생활은 점차 나아졌고, 우리 가족은 부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부유하진 않아도 크게 모자람 없이 살았다. 부모님은 착실히 돈을 모으며 그렇게 터를 잡으셨다.
부천에 살던 우리 집과 서울 목동의 집값의 차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크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더 좋은 입지로 옮길 것을 주장하셨고, 어머니는 이제야 안정된 생활을 해가고 있으니 굳이 모험을 하지 말자고 강력하게 반대하셨다. 두 분은 오랫동안 충돌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뜻대로 되었다. 그 후로 부천과 목동의 집값은 두 배 이상 벌어졌고, 아버지는 그 일을 큰 한으로 여겨, 내가 결혼하는 전날까지도 나에게 기회가 되면 좋은 동네로 꼭 이사하라 당부하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모님은 어머니 동창분의 권유로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하셨다. 초심자의 행운이랄까 처음에는 주가가 꾸준히 올라 꽤 좋은 성과를 보였다. 동창분의 가족과는 투자 정보를 나누며 더욱 친밀해졌고, 부모님은 이 시기가 진정한 재테크의 시작이라고 믿으셨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급락장에서 공포에 휩싸인 부모님은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했지만, 시장은 순차적으로 회복하며 우리 집을 빼고 모두가 원상 복귀했다.
이후 우리 가족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빚을 안고 지냈고, 난 학창 시절 내내 주식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안고 살았다. 주식과 투자라는 단어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을 시도하셨다. 이번엔 고모의 추천으로, 부동산에 눈을 돌리셨다. 고모는 인천 도원동의 재개발 예정 지역에 빌라를 사두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아버지는 그 말에 이끌려 어머니와 상의도 없이 빌라를 매입하셨다. 그러나 그 빌라는 내가 결혼할 때까지도 제자리였고, 재개발 소식조차 흐릿해져만 갔다. 이 투자 역시 실패였다.
이 모든 경험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어린 나는 점차 확신하게 되었다. "차라리 저축이 최고의 미덕이다" 뭔가를 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의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며 내가 그 시절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둘정의해 보았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부모님에겐 확고한 투자 철학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도 없으셨다. 어머니는 친구의 말에, 아버지는 고모의 말에 좌우되었을 뿐이다. 누구나 듣기 좋은 말을 쉽게 받아들이고, 합리적인 판단 없이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부모님은 이제 은퇴하셨고, 이제는 내 차례가 되었다. 부모님의 경험은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다. 그 경험들이 내게 타산지석이 되어, 나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 나은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한다. 실패 속에서 배운 교훈들, 마음을 다잡는 방법,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투자 철학을 되새기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들도 나와 부모님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선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