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했고 지금도 소중한 친구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자주 보기가 힘들어진다. 꼭 그런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모습과 방향성이 달라지면서 서먹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과연 나는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옆에 있고 싶고 붙잡고 싶어서 노력해도, 그 사람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를 좋아해 주고 잘 대해주는 사람이지만 무언가 나랑 맞지 않다고 느끼거나 그 관계가 내 편에서 즐겁지 않으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상대편에서도 그걸 조금씩 느끼다가 결국엔 서로 굳이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줄어들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내가 속한 공동체나 관계들이 변화된다.
그러면서 멀리 있는 소중한 사람보다 그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면서 살아가게 된다.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말이다.
점점 그렇게 멀어지는 관계들 속에서 모든 걸 그저 흘러가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극강의 집순이인 나에게는 이렇다가 조만간 일적인 관계들만 남게 될 것 같다.
소중한 인연이라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는 게 맞다.
'마음은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가만히 있는 건 상대방뿐 아니라 나조차도 속이고 있는 건지 모른다.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은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집순이 성향을 핑계로 누구에게도 먼저 약속을 잡지 않고, 내 입으로 한 약속도 쉽게 다음으로 미뤄버리곤 했었다. '미안해. 하지만 나 원래 그런 거 알잖아.'라고 말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쩜 그런 이기적이고 얌체 같은 소리를 잘도 했나 싶다.
배려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도 언젠가는 그 힘이 다한다.
마음이 가면 한 발짝 더 내가 움직이면 된다. 내가 가지 못하면 와 달라고 말하면 된다.
다가서도 멀어지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건 그 상대방의 선택이니까.
마흔이 되어도 인간관계라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지만 어쩌면 그것도 모든 일과 마찬가지인 것도 같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잠잠히 기다릴 뿐.
그 결과까지는 내 뜻과 능력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패배주의나 운명론 같은 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 뜻대로의 '결과'를 내려놓으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주어지는 결과에 다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