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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Jul 22. 2022

프리랜서 3년 차로 살기

2년 전 일기

프리랜서가 된 지 2년 하고 4개월째.

2년 전 한 겨울에, 봄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던 그때.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이자 또 한편으로는 새장 같은 곳이자 벽이기도 했던 직장을 나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헤아려보니 아직 3년도 안됐다.


내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직장을 나올 때 아쉬움은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죽도록 고생할)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도 진심으로 있었고, '여기 아니어도 나는 나가서 뭐든 할 수 있다.'는 분노에 찬 확신도 있었다. 그 감정들이 가득 차지 않았다면 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쭉 프리랜서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은 없었다. 쉬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회사가 있다면 다시 들어가겠다 생각했다.


10년 넘는 회사생활 동안 나는 항상 회사에 과잉충성을 해왔다. 회사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나에게 주어진 일과 역할에 인생을 걸었다. 굉장히 멋지게 산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상은 짧은 내 소견이 마치 정의인 것처럼 우기고 고민만 했을 뿐이다.


아무리 바보라도 실패가 거듭되면 조금은 깨닫는 것처럼 그렇게 10년을 좌충우돌해보니 조금은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


그 하나를 깨닫는 데 나는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론적으로 회사를 나온 건 체력이 바닥이 되어서 예전처럼 달릴 수가 없어져서였다.

생각해보면 몇 년을 야근과 특근이 당연한 것처럼 달려왔으니 당연한 일인데도, 나는 그렇게 방전된 상태의 내가 익숙하지 않았다.


좌충우돌했지만 어쨌든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몇 가지 제안을 해주었는데 그때는 그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무조건 나가겠다고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제안이 내 안에 불덩어리처럼 타오르는 분노를 꺼줄 만큼은 아니어서였던 것 같다.)


퇴사하고 1년은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외주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독서심리치유지도사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1년 과정이었는데 전혀 몰랐던 분야인 심리학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자격증도 딸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공부'를 한다는 자체였다. 대학 졸업 후에 깊이 있게 무엇을 공부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무언가에 몰두하고 배우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첫 해 1년의 대부분은 잠을 자는 데 썼다.


회사를 나오면 스트레스가 바로 없어지는 건 줄 알았는데 오랜 시간 쌓인 독을 몸에서 빼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감기에 걸리고, 감기가 나아가려고 하면 장염에 걸리고, 이유를 모르는 두통과 복통이 계속됐다. 그래서 참 많이도 앓고 누워 있었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틈틈이 산책하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갔다.


누워있는 시간이 7이었다면 공부가 2, 일은 1 정도였다. 실제 수입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다행히 퇴직금이 있었다.


그렇게 1년이 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프리랜서 2년 차가 되었다. 체력을 좀 더 회복했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은 일도 받아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일이라는 게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아하고 여유로운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쉽고 시간적 여유가 있고 엄청 재미있는 일이라면 회사 안에 있는 누군가가 하려고 할 것이다.


주로 프리랜서에게 오는 일은 시간이 엄청 촉박하고 분량은 많은데 회사에서는 이 일에 크게 기대를 한다기보다는 빨리 끝내는 것을 원하는 경우, 그런 일들이 프리랜서의 몫이 된다.


그러다 보니 급한 일을 할 때는 하루에 4, 5시간 겨우 자고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날도 생겼다. 그렇게 또 며칠을 하게 되면 체력이 방전되어서 모든 생활 리듬이 깨지고 일한 날보다 더 오랜 시간을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써야 하는 날도 생겼다.


그렇게 프리랜서 2년차의 몇 달을 지내고는 루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적으로 일하고 규칙적으로 쉬고,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일을 관리하고 끌어가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란 원래 일이 없는 날도 있다.

하지만 루틴을 만들려면 그런 날도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아야 한다.

관련 자료를 찾거나 책을 읽거나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정해놓은 업무 시간에 공부했다. 말 그대로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업무와 관련 없는 공부도 할 수가 있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3년차가 된 지금의 루틴은 이렇다.


7:00 기상

7:30 기도

8:00 아침식사, 성경 읽기(시편 2~3장, 잠언 1장), 묵상, 커피 한잔

9:00 업무 시작

9:40 쉬는 시간(안구 운동, 스트레칭, 빨래 돌리기, 환기하기, 차 끓이기 등)

10:00 업무 시작

10:40 쉬는 시간(안구 운동, 빨래 널기, 청소, 뉴스 보기, 짧은 영상 보기...)

11:00 업무 시작

11:40 쉬는 시간 겸 점심 식사 준비

...

...


아침 기도, 성경 읽기, 묵상은 하루 중 무슨 일보다 앞서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40분 일하고 20분은 쉬기의 반복.

20분의 휴식 시간에는 여러 가지 집안일도 한다.


이것은 유명한 김명남 번역가의 루틴을 따라서 만든 것이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것이 확실히 집중력이 높아지고 효율성도 있다. 그리고 눈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일하면 이걸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또 카톡이나 여러 가지 연락들도 가급적 쉬는 시간에 한다.


쉬는 시간에 집안일 하기는 모든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집에서 일하다 보면 계속 집안일이 눈에 들어온다. 청소, 빨래, 설거지, 정리, 장보기.... 이것들을 모아서 하게 되면 큰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집안일을 하게 되면 미뤄서 일이 커지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집안일 역시 '정해진 시간 안에' 라는 한계를 주면 빨라지고 효율적이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조금씩 수정하고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면서.


내 예상보다 나는 꽤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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