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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Jun 25. 2023

퇴사할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에세이가 아닌 그냥 일기

지금 회사에 들어올 때, 회사를 다닐 기한을 정했었다.

길어도 5년.

5년을 넘지는 말아야지 했다.


그 다짐이 여러 가지로 나를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

그 기간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회사에 과잉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게도 만들어 준다.


어느새 길어도 5년이라고 했던 시간의 절반을 지나왔다.

아니, 지나온 시간은 2년 반이지만 앞으로도 2년 반이 남아있다고는 할 수 없다.

최장 기간만 정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제 얼마를 더 다닐지는 그저 선택의 문제다.


객관적으로 독립할 준비가 되었느냐 판단했을 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퇴사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 것 같아서 내가 정한 기준이 있다.


-내가 독립한다고 했을 때 함께 일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3명 이상)

-내 일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1명이라도)

-당장 실행할 구체적인 아이템과 실행 자금이 준비되어 있는가?


회사에 다시 다니면서 이것들을 준비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2년 반이 지난 지금 중간 점검을 해보니 처음의 그 포부들은 어디로 가고 그저 매일을 허덕이고 있다.


예상치 않았던 변수들의 파도 속에서...


쉬운 직장 생활이라는 건 없다는 잠시 잊어버렸던 진리를 다시 몸으로 깨닫는 중이다.


올초에 함께 일했던 팀장급들이 연달아 나가고, 그 덕에 모든 일들이 나에게 모이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기존 사람들과 부대끼는 몇 달 동안, 나도 정신없이 나부끼는 중이다.


이 작은 조직에서 나라도 자리를 지켜야지 하는 책임감과 도망가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차한다.

'나 정도 경력이면 1인출판사 차리고도 남지.'

'특색 있는 책을 큐레이션 하는 작은 서점은 어떨까?'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이 참에 집중해서 해보는 건?'


요즘은 이렇게 도망갈 방향을 아주 다양하게 구상하고 있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발휘되는 상상력에 놀랄 정도로.


하지만 나는 나를 이제는 좀 알아서,

이러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알고 있다.


진짜로 하지 않을 거라서, 거침없이, 막 상상하고 있다는 것도.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가 지나야 끝이 난다.

스트레스는 있지만 아직은 내가 하던 일을 중간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는 않다.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정말 열심히 해 왔기 때문에 이 일의 결과까지 내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또 분명히 잘될 거라는 기대감과 자신이 있어서, 좋은 성과가 나는 걸 지켜보고 싶다.

버틴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걸 위해 버텨야 한다면 버텨보겠다고 생각한다.


'독립할 준비가 되면 퇴사하겠다'는 나와의 약속도 지키고 싶고.



그래서 아직은,

그만두지 않으려고,

그만두는 상상을 하며 나를 지탱한다.



매일 출근길에 오늘도 정말 최선을 다하자 하는 다짐과 함께 오늘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모순이지만 둘 다 진심이다.

어느 날, 어떤 진심이 이길지 나도 모르지만, 둘 다 진심이니까 어떤 결론도 잘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다.



그래도 이번 주는 극단적인 퇴사 상상보다 여름휴가 계획으로 머리를 좀 식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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