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혹독한 독감을 앓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감기에 잘 안 걸리는 게 자부심이었을 만큼 건강관리를 잘해왔는데.
나이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독감 전에도 여름부터 심해진 두통 때문에 가을 내내 하루는 신경외과, 하루는 한의원을 다녔다.
MRI 촬영, 도수치료, 한약, 추나, 침 치료로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쓰던 중에
회사에서는 2년 넘게 진행해 왔던 시리즈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 일이 터졌다.
갑자기 왜 방향이 바뀌어야 하느냐고 화를 낼 시간조차 없었다.
바꾸는 건 바꾸어야 하고 마감은 원래 일정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겨우 마감을 했고 그리고 병이 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처방받아서 지은 약을 다 먹어도 낫지를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감기가 끝나지 않았다.
너무 기침을 해대서 머리가 울리고 배에는 복근이 생길 지경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 연휴에 꼬박 누워 지냈지만 몸이 회복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고 겨우 기침이 잦아들었다 했더니 장염 증상이 시작됐다.
입술 포진에 혓바늘까지 돋았다.
그런 상황인데도 단 하루도 연차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주 금요일 출근하다가 쓰러질 것처럼 힘이 들어 결국 점심시간에 병원에 가서 비타민 수액을 맞고 회사를 조퇴했다.
그렇게 주말까지 병상에 누워 몸을 추스르고 약 3주 만에 천천히 컨디션이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도 엄청난 병치레를 겪으며 절실하게 나를 다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공식들이 이제 맞지 않는다.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면서 나는 나만의 건강관리 루틴이 있었다.
평상시에 비타민 B, C, D에 유산균도 챙겨 먹고 많이 피곤하다 싶으면 홍삼을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 때도 후유증 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회복됐는데... 문득 돌아보니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겪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도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고 필라테스나 걷기 운동을 해왔었는데 그걸론 소용이 없었다.
그럭저럭 늘 해오던 방식과는 다른 게 필요한 때라는 걸 느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내가 알던 내가 맞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어느새 나는 많이 변했는데 내가 나를 몰라줬던 건 아닐까 싶었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과 감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좋아했던 것들을 이제 더 이상 좋아하지 않고
이상하다 생각했던 것들 중에 괜찮아진 것들도 있다.
어느새 내가 알던 나는 예전 버전이 된 거다.
그래서 다시 나에 대해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몸과 마음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주고,
내가 알던 나를 나에게 강요하지 말자.
변해 가는 것을 나이 들어서 그렇다고 한탄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렇게 나를 다시 알아가야 한다.
어쩌면 생각보다 멋진 나를 발견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