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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Jul 07. 2020

고교학점제는 공교육 위기의 대안이 될 것인가

교육부의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과 관련해

요즘 고교학점제 관련 자료를 계속 보고 있다. 중학교라 상관없을 것 같지만 교육 정책이 고교를 중심으로 중학교, 초등학교 순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요즘 말하는 성취평가, 과정 중심 평가가 그렇다)

   정부는 2025년까지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한다. 전교조 내부에서도 고교학점제 관련해 찬성과 반대, 유보가 혼재돼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고교학점제는 제대로 정착되기도 어렵고, 전면 도입할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공교육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 제도가 현행 중등교육의 틀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이유다.

  고교학점제. 한마디로 대학 학점제처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한 반의 학생들이 모두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진급을 하지만 고교학점제 하에는 학반과 학년 구분이 무의미하다. 학점만 채우면 조기 졸업도 가능하고 낙제, 유급제도도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찬성론자들은 고교학점제가 수업시간 잠자는 학생들을 줄일 수 있고, 학생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해 교육과정을 다양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좋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내신 절대평가와 수능 폐지가 그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개설 과목이 다양한 만큼 학년별 석차 산출이 불가능하고 석차에 따른 등급별 상대평가도 어렵다. 또 소규모 학교일수록 다양한 과목 개설을 위해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과목 개설은 국영수 중심의 수능 준비도 어렵게 만든다. 수능 정시가 유지된 상태에서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학생들이 수능 과목 중심의 편식 교육을 하거나 내신에서 점수를 잘 주는 과목 위주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교학점제 전제로 내신 절대평가와 수능 폐지를 제시했지만 오히려 교육부는 수능 비중을 늘리는 정시 확대라는 모순적 결정을 했다. 내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고교학점제 도입 무산론이 나온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고교학점제가 현 공교육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왜곡시키거나 심화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교학점제의 한계는 개인의 권리와 선택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교육철학에 기반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협력과 연대, 사회적 관계 형성, 비판적 안목이라는 교육적 활동을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 자유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거기에 교사는 교육활동 주체에서 배제된다. 한마디로 교육수요자론을 근거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진열장의 수많은 상품처럼 수많은 수업들이 진열되어 있고, 학생들이 마음에 드는 수업을 고르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학이 수많은 시간강사들의 헌신과 노동 수탈 구조 위에서 유지되는 것처럼 고교학점제가 교사들의 신분, 노동 안정성을 깨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흐름도 존재한다. 늘어나는 과목 수만큼 교원 수를 늘려야 하지만 교육부는 교원임용을 더 늘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시간 강사를 대거 고용하거나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려 할 것이다. 이런 흐름들은 학교 비정규직을 증가시키면서 교육활동의 안정성과 질을 담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간다. 고교학점제를 공교육 위기의 대안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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