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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Jul 10. 2020

IB교육과정 도입은 교육혁신이 아닌 성과 지향의 결과물

아래 글은 IB교육과정 도입과 관련해 2019년 6월 대구교육청에서 발제한 토론문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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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IB교육과정이지?  

  

  재작년(2018년) 강은희 대구교육감이 IB교육과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 대구 지역에 IB교육과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작년 말부터 여러 차례의 자료 검토와 대구교육청의 IB교육과정 추진 상황을 보며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IB교육에서는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중시한다. 대구의 도입 과정에서 이러한 가치나 원칙은 외면되거나 무시되었다. 올해 초에야 전교조 대구지부에서는 IB교육과정 전면 재검토 입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의견수렴을 위해 공청회와 토론회를 요구했다.  작년(2019년) 6월 이런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찬성과 반대 패널을 동수로 배치한 토론회가 실시되었다.


   IB교육과정 도입이 과연 우리 공교육을 혁신하고 학교 현장을 개선시킬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교육계의 고질병인 새로운 실적과 성과 내기용으로 끝날 것인지 지금으로는 확실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대구굥규청이 IB교육과정을 교육 혁신의 발판으로 삼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동안 대구교육청은 IB교육과정 장점만 홍보하면서 일방적으로 도입을 강행해 왔다. 대구교육청의 <2019 국제인증 교육과정(IB) 운영 기본계획(2019년 2월)>을 보면 올해 4월과 10월에 IBDP 인증 신청, 4,000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IB연수 시행, IB TF팀 운영, DP 교과 한글화 및 채점관 양성 등 일방적 추진 계획만 적시되어 있다. 그리고 추진 계획의 1/3은 각종 설명회와 홍보회, 언론을 통한 IB홍보 다큐멘터리 및 홍보 영상 방영, 홍보 리플릿 배부, 경기외고와 국제 학교 등 IB학교와의 교류 및 해외 워크숍 등으로 채워져 있다.     


  IB학교는 보통 예산 몇 천만 원에 1, 2년짜리 연구시범학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확한 비용 추계가 나온 바 없으나 IB 관련 예산으로만 수십억이 소요되고, IB학교로 인증받게 되면 중간에 그만두는 게 쉽지 않다. 공교육 혁신을 목표로 외국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그전에 다년간의 연구와 검토, 교사·학생·학부모·지역 등 교육 주체와 수차례 공청회 및 토론회를 통해 면밀한 논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우리 학교 현실을 감안해 교육제도와 규제 정비, 재정 조달 계획, 조례 등 법률 정비와 중앙 정부 및 지역과의 유기적 협조 체계를 갖추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청의 IB 기본 운영계획에는 이러한 과정이나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IB교육과정 도입이 면밀한 검토와 연구, 논의를 거쳤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간 대구교육청은 IB교육과정의 장점이나 효과만 강조하면서 비판이나 부작용 우려에 대해 단지 ‘오해’와 ‘편견’이라고 치부해 온 경향이 없지 않다. 지역의 많은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은 IB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장점과 효과만 강조하는 대구교육청의 태도를 보며 의구심을 나타내거나 우려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제도라도 완벽하지 않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수 있으니 도입이나 시행 전에 면밀하게 연구하고 검토하는 과정은 필연이다. 그러나 대구교육청의 IB교육과정 도입 과정은 우선 시행을 전제로 하고, 나머지는 따라오라는 식이어서 관료적이고 독단적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2. IB교육과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1. IBDP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적합한 시스템인가?    


   IB교육과정에는 분명 좋은 요소들이 많다. 수능 등 객관식 평가나 교과서 검인정 제도의 문제점 개선, 교사들의 수업권 확보 등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교육 진영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요소들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외국 제도라 하더라도 그대로 가져와 우리 교육 현장에 바로 투입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대구교육청은 기존 IB학교들이 모두 영어로 운영되어, 외국인 교원 채용 등 고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반면 대구와 제주교육청은 올해 IB 한글화를 추진하기 때문에 외국인 고용 등 고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영어 사교육에 대한 부담도 적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IBDP를 한글화 한다 하더라도 6과목 중 4과목만 한글화가 이루어지고, 2과목은 여전히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그런 점에서 IB는 여전히 영어 회화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학생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 IB교육과정은 원래 외교관이나 상사원 자녀 등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 자녀들에게 적합한 국제학교용 교육과정이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일정 수준이 보장된 학업 프로그램과 평가 인증시스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업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들이 따라가기 버거울 만큼의 학업 수행능력과 과제를 요구한다. 특히 IBDP에서 필수라 할 수 있는 TOK(지식론), 4000 단어 이상의 EE(소논문), CAS(창의체험활동과 봉사활동) 등은 학생들에게 상당량의 과제 수행과 학업 부담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정 형편이 중산층 이상인 학생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하위권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일반계고등학교에 IBDP가 적용된다면 상당수 학생들이 중도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유럽에서는 IB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 나라는 대입에서 논서술형 시험을 시행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토론식 수업, 협력 수업 등 ‘생각을 끄집어내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드시 IB교육과정을 도입해야만 이러한 교육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2-2. IB 시범학교가 공교육 전체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IB학교 하나를 인증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IBO에 매년 지불하는 연간 약 1100만 원의 회비, 시험 한 번 칠 때마다 학생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약 93만 원의 평가 비용, 수십 억이 소요될지 모르는 IB 한글화 비용, IB인증 기준을 맞추기 위한 학교 교육환경 개선이나 별도의 교원 수급 및 고용 비용, 수 차례에 걸친 교원 해외 연수와 컨설팅 비용,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IBO 점검단의 체류 비용 등이 그것이다. 소수 학생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에 막대한 예산에 쏟아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IB교육과정 도입 찬성론자들도 일부 학교만 먼저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형 IB(KB교육과정)로 확대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IB교육과정을 시행하는 학교들은 대개 한 학급에 15명 이내의 학생들로 편성되어 있다. 특히 대구는 IBDP학교에서 한 학급 정도만 IB교육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다른 학급은 30명 내외의 학생들로 편성되어 수능이나 내신에 대비한 수업을 받지만 IB학급은 15명 내외의 학생들이 토론식 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 등 IB식 교육을 받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게 된다. 더구나 교사가 IB학급에만 들어가 수업하는 것이 아니어서 IB학급에서 IB수업을 하다가 다른 일반 학급에서는 수능이나 내신을 대비한 기존 방식으로 수업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렇다고 IB학급의 수업 방식이 다른 일반학급에 확산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반 학급 학생들은 객관식 수능과 상대평가인 내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구교육청은 한 학교 내에서 IB교육을 듣는 소수 학생들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2-3. IB교육과정 도입은 새로운 명문고 만들기?  


  IB교육과정 도입 찬성 측에서는 IB학교 시범 도입을 통해 장단점을 연구하고 공교육 혁신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IB교육과정과 관련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는 교육혁신이 아니다. IBDP를 이수한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치지 않고 어떻게 어떤 대학을 갈 수 있는지, 서울대에 들어가려면 IBDP 점수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등등이다. 다시 말해 IB교육 찬성론자들의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일부 교육감들은 IB학교를 소위 명문 학교 육성을 위한 한 방편으로 보고 있는 입장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IB교육과정 도입만으로 공교육 개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객관식 수능시험 폐지, 논서술형 시험 도입 등 국가적 차원에 추진된다. 반면 대구교육청의 IB교육과정 도입은 이와는 경우가 다르다. 특히 대구에서 IB후보학교로 추진 중인 대구외고나 포산고, 경북대 사대부고 등은 발제문에서 밝힌 ‘교육 여건이 취약한 지역’의 학교에 해당하지 않는다. 포산고는 자율고이고 대구외고는 특목고, 경북대 사대부고는 일반계고등학교 중에서도 중상위권 이상에 속한다. 특히 포산고나 대구외고는 학생들의 과제 수행능력이나 학업 수준이 매우 높고, 교육 여건도 우수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대구교육청의 IB교육과정 도입은 공교육 혁신을 위해 IB 도입이 필요하다는 기존 주장과 배치된다. 결국 자율고, 특목고에 IB교육과정을 도입한다는 말은 명문대 진학이나 해외 유학을 위한 새로운 특권 학교 만들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4 교육청의 혁신 없이 학교 혁신, 수업 혁신은 가능한가?    


  앞서 말한 대로 다른 대다수 나라에서 IB를 학교 단위로 도입하는 이유는 학교 구성원들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와 참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의 상황을 들어 보면 이러한 전제가 무시된 채 진행되고 있다. 장학사가 여러 차례 학교로 찾아와 IB관심학교를 신청할 때까지 찾아오겠다는 압박을 받았다는 사례, 교장이 다수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교육청 지원금이 나온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신청한 사례, 전체 교직원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교장과 담당자 몇 명이서 짜고 일방적으로 신청한 사례 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연구학교 신청 시 교직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다. 그러나 대구교육청의 <2019. 국제인증 교육과정(IB) 관심(후보) 학교 공모 계획>에는 ‘학교 구성원 중 20-30% 정도’만 찬성해도 신청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IB교육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정을 전반적으로 재편해야 하고 새로운 평가방식 도입이 필요하다. 당연히 전체 교직원의 의견수렴이 중요한 데도 대구교육청은 소수 동의만으로 가능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으로 IB관심학교 신청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빈번이 보고되었다. IB교육과정이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대구에서 IB관심학교가 운영되기 시작한 건 2018년 2학기 때부터다. IB학교는 보통 관심학교, 후보학교, 인정학교 단계로 이루어지고, 각 단계마다 최소 18개월에서 24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구는 불과 1년 만에 IB후보학교, 2년 반 만에 IB인증학교 단계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의견수렴 절차나 적용에 필요한 기간까지 단축해 가며 성급한 성과 내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물론 이러한 기간 단축이 학교 현장의 추진 상황이나 요구를 감안한 계획이라 보기 어렵다.        

 


2-5 일제고사와 IB교육과정    


  대구에서는 매년 3월, 일제고사 반대 피켓 시위를 연례적으로 한다. 대구경북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육청에서는 객관식 진단평가 대신 진단 활동으로 대체했다. 반면 강은희 교육감은 후보 시절부터 일제고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IB교육과정이 교사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교과 간 융합 교육 및 과정 중심 평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일제고사와는 정반대의 교육철학을 반영한다. 그런데도 강은희 교육감은 ‘끄집어내는 교육’인 IB교육과정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구교육청의 정책들을 보면 일제고사뿐만 아니라 국제학교 설립, 진로 내비게이터, 수준별 방과후 수업 같은 객관식 평가나 입시 맞춤형 정책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이렇듯 상호모순적인 교육 정책이 동시에 추진된다는 것은 교육청이 IB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추진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3.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없는 제도 도입은 무용지물    


  IBDP와 관련해 대구에서 후보학교 3개교가 모두 인증학교가 된다 하더라도 IB이수 학생은 일 년에 100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 학생들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만 하더라도 최소 수십 억 이상이다. 고교 무상급식에는 무관심한 대구교육청이 소수를 위한 IB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교육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반대, 청소년 노동인권 조례 부결, 일제고사 강행, 전교조 전임자 불인정 등은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교육 관료들의 시선과 관점을 짐작하게 한다.     


  IB교육과정 도입을 통해 진정 공교육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교육청 관료 중심의 탑다운 방식으로 지침을 내려 보낼 일이 아니다. 학생과 교사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교육활동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진정한 장학 활동이 아닐까? 오랜 기간 복종과 지시에 익숙해져 버린 교사와 학생들에게 다시 공문과 지침으로 교육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가지라는 교육청 지침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처럼 교육 당국도 당장의 성과와 실적에 매달려 IB교육과정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또 IB교육과정 도입을 위해 수십 명의 장학사와 파견 교사를 동원해 TF를 꾸린 대구교육청이 학교 업무 정상화와 교사 교육권 확보를 위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신경써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토론 수업을 하라고 독촉하기 전에 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같이 토론하는 문화를 우선 정착시키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하라고 말하기 전에 교사와 학교, 교육청부터 민주적이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직이 되도록 바꾸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교조 전임자 인정을 거부하고, 대화 창구를 단절하는 것부터 공감과 소통, 배려의 교육역량 강화와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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