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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땡 Dec 05. 2022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이곳은 그대로 입니다.

관광도시이자 양대 조선소가 있는 이곳, 거제도


부산에서 쭉 살아오던 내가 결혼을 하고 오게 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도. 

거제는 관광산업과 조선업이 특화된 지역이다. 크고 작은 바닷가가 많아서 결혼 후 내 마음이

영 뒤틀리는 날에는 차 시동을 걸어 가까운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시끄러운 속을 달래곤 했다.

거제살이 초반에는 관광객 모드로 지냈다. 어디에 뭐가 맛이 있고, 어느곳에 가면 경치가 죽여준다는 추천 맛집과 관광지 리스트를 정리해놓고 도장깨기 하듯 하나하나 정복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관광객이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는 관광객이랄까.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보니 다소 시간에 쫓기던 예전의 여행들과는 사뭇 다른 ‘슬로우 트래블’을 누리는 것이 참 감사했다. 결혼 전 도시에 살면서 늘 시간에 쫓기고 해야 할일들에 쫓겨 나를 닥달했던 조급함은 섬나라인 거제로 오면서 서서히 사라졌고, 이곳에서 만큼은 내가 천천히 흘러가도 되었다. 그래서 이 평안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남편은 대형 조선소에서 근무한지 꽤 오래된 사람이다. 하지만 나와의 결혼과 동시에 조선업 상황이 어려워졌고, 결국 남편은 회사로부터 희망퇴직을 권유받게 된다. 


“희망퇴직을 하면 퇴직금 얼마를 준대. 그런데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이 지나면 받을수 있는

퇴직금은 점점 줄어든단다. 어떻게 해야되냐 우리.”

 

“옆 부서 누구누구는 퇴직금 한몫챙겨서 이직했대.”


갈 곳이 정해진 누군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퇴사를 하겠지만 이곳에 뼈를 묻으려 했던 남편은 퇴사 이후 마땅히 갈곳이 없었기에 존버 정신으로 퇴직권유를 물리쳤다.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니는 곳’이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조선업이 호황일때는 거제의 술집이며 식당에 사람들이 터져나갔다. 조선소 직원들이 돈을 물쓰듯 쓰니 자영업자들도 돈벌이가 꽤 짭짤했을터. 하지만 10년전 조선업의 불황이 먹구름처럼 찾아왔고, 이곳의 젊은이들은 자발적인 퇴사라기보다는 타의에 의해 일을 그만두고 하나둘 거제를 떠났다. 한때 전국 1위의 출산율을 자랑했던 곳이 썰렁해진지는 꽤 되었고 파리 날리는 식당들도 점점 늘어났다. 


거가대교


자, 이제 내가 처음 거제로 온 10년전과 지금을 보면, 나를 위로해주던 거제의 천혜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변치않고 나를 반겨준다. 우직하게, 따뜻하게.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젊은이들 취향의 감성 커피숍이나 숙소, 음식점들이 알음알음 생겼다는 것. 그리고 조금은 씁쓸하게도 10년이 지난 조선업의 업황은 여전히 빨간불이다. 예전 호황의 시기로 다시 돌아갈수는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업계가 어렵다보니 노동력에 비해 대우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현장 기술을 싹 배우고는 대우가 훨씬 좋은 윗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의 수도 꽤 많으며 대형 조선소가 있지만 공무원 처럼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에 언제든 책상을 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거제 사람들에게는 만성적인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지로서의 거제이기도 하기에 좋은 경치들이 나를, 우리를 손짓한다. 여기서 잠시 쉬고 가라고, 힘들겠지만 버텨보자고.  “그래, 그까이꺼 또 살아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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