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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땡 Dec 05. 2022

아빠가 돌아가시기 1주일 전 아빠를 만난 곳

거제 와현 해수욕장

우리 아빠는 유리, 샷시 시공을 오래토록 해오셨다. 그 옛날 사우디에 가서 유리 기술을 배워오신것을 너무 자랑스러워 하셨던 우리 아부지. 아시아를 주름 잡으려는 아빠의 포부를 담아 가게 이름도 ‘신아유리’. 

당신의 전문 기술이 있으셨기에 따로 정년이랄것도 없었고 당신의 건강만 허락된다면 오래 오래 할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삐까뻔쩍한 승용차가 아닌 유리 자재가 실린 화물차로 나를 학교로 데려다 주는 아빠가 부끄러웠다. 아빠의 가게에는 유리를 자를 때 쓰시는 커다란 책상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거길 맨발로 올라갔다가 유리조각이 내 발에 박힌 적도 부지기수. 엉엉 울고 있으면 엄마나 아빠가 그 유리 조각을 금새 빼주시곤 했다. 



황소처럼 주말도 휴가도 없이 매일 가게에 나가셨지만 그에 비해 실속은 없었다. 받아야할 공사대금은 점점 쌓여가는데 독촉도 하지않고 돈을 주면 받는것이고 안주면 못받는다는 기부천사 같은 마인드로 일하시고, 현장 작업이 파하면 같이 일한 인부분들 밥사주고 술사주느라 집에 늦게 오시는 날도 잦았다. 남들에게는 호인이었지만 정작 우리집에서는 조금 겉도는 존재셨달까. 내가 자존심상하지 않는 선에서 말하자면, 가정적인 아빠는 아니셨는데 그러한 아빠가 내가 결혼을 하자 달라지셨다. 결혼 후 친정집의 내방이 텅 비어진 모습을 보시고는 그 방에서 엉엉 우시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하시다가 내가 너무 보고싶다고 엄마앞에서 눈시울을 붉히시기도 하고, 뜬금없이 안부전화도 자주 거시는 등 감정적인 표현을 조금씩 하시게 된것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첫째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는데 산후 통증으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고 그 앞에서는 내색을 못하시다 집에와서 엄마 앞에서 내가 애 낳고 얼마나 아팠겠냐시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나는 아빠의 이런 변화가 싫지 않았다. 그동안 감정적 교류가 거의 없었던 부녀 사이의 전환점이 된 듯했다. 



내일 아빠 거제도 와현 해수욕장 간다. 일하러.” 


아빠께 내가 사는 거제 와현해수욕장쪽에서 작업의뢰가 들어와 시공하러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시 짬을 내어 아빠를 보러 가기로 했다. 3층 건물에 펜션과 커피숍을 새로 짓는데 그곳의 샷시와 유리작업을 하고 계셨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만 있어서 자재 나르기가 힘드시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왔니?” 하시면서 새빨간 목장갑을 낀 채 무거운 샷시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시는 아빠를 만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다르게 아빠 뒤에 후광이 비춰졌다. 마치 성당 벽화에 그려진 아기천사들에게서나 볼수 있는 그런 후광말이다. 


“아빠,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래, 어깨쪽이 좀 아프다. 그래도 아직은 할만해.” 


아빠 얼굴을 잠시 보고는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 후 아빠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지만 육아로 정신이 없어서 미처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 전화가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말이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뵌 1주일 뒤 아빠는 집에서 주무시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셨고, 하루 아침에 돌아가셨다. 그때의 황망함과 허탈함이란. ‘이제 좀 아빠랑 친해지려고 하는데. 아직 나 아빠랑 할말 많은데. 황소처럼 일만하신 우리 아빠 이제는 남은 여생 좀 누릴만 한데.’ 




충격을 심하게 받으신 엄마를 대신해 장례식장에서 나는 정신을 더욱 차려야 했다. 흐트러지면 안되고 무너지면 안된다를 계속 되뇌었다. 발인날 장지에 가기전 아빠가 일하셨던 가게에 가서 술도 뿌려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내가 어릴적 부끄러워하던 아빠의 직업은 이제 와보니 참으로 숭고한 일이었다. 한 직종의 일을 30여년이 넘도록 꾸준히 해 오신 우리 아빠는 충분히 존경 받을 만했다. 아들 낳아라 아들..하시던 아빠는 외손녀만 보고 돌아가셨지만 지금 내가 그토록 당신이 원하던 아들 둘을 더 낳았다는걸 아시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 가시는길 아빠의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였다는 것이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쉼없이 달리셨던 아부지가 긴 휴식기를 가지시는듯 했다. 요즘은 길을 걷다 아빠와 비슷한 연배에 외모를 가지신 분들을 마주치면 아빠가 그리워져서 금새 울컥 울컥,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겨울이 오면 마음이 더더욱 을씨년스러워진다. 당신이 언제 제일 행복했는지 언제 제일 힘들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대답을 못들은게 늘 아쉬워서 나혼자 허공에 대고 물어보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가끔씩 내 목에서부터 울음이 차오르는 그런 날들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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