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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크림한스푼 May 01. 2022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능력주의란,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원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능력주의의 원칙은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 정도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의 저작 공정하다는 착각. 그리고 같은 제목의 노래도 있다고 한다.

      능력주의 담론이 화제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종종 사람들은 두 개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의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당신과, 불평등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당신은 여전히 두 개의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친구가 되는 방법을 찾았을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도무지 어떤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몰라서, 오늘은 그냥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 사람은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매 학기 성적 우수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학교 생활에 더해 여러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봉사 활동, 공모전 참여, 그리고 방학 때면 세계 곳곳으로의 여행 등등, 해보고 싶은 것과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대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쯤엔가, 학석 통합과정에 지원해서 5년 만에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도 교수님 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 교수님들과의 프로젝트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대학원에 다니는 내내 두세 개 혹은 그 이상의 과외를 하며 열심히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학비를 전액 지원받고, 생활비까지 받는 조건으로 박사과정에 합격해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유학생활 동안에도 내내 열심히 살았다. 예를 들어서 박사과정 초반에는 정말 밥 먹을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미숫가루를 타 왔는데 그걸 마실 시간조차 없어서 잰걸음으로 강의실과 강의실을 이동하면서 들이켰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고, 그래서 지금은 마음에 드는 직장에서 또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사람의 노력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무엇보다도,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 환경에서 태어났다. 필요하면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을  있는 가정 형편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사실은 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대학 등록금을 내주실 부모님이 계셨다. 대학 시절 내내 성실한 과외 교사였지만 과외를   있었던  애초에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성적이 상위권에  가능성이 높고,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일수록 부모님의 소득 소준도 높다는 통계를  , 좋은 대학에 다닐  있었던 것도 상당 부분은 운에 해당한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그건 생계가 아닌 경험을 위한 아르바이트였다.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했을 땐, 고민 없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있었으니까. 많은 경우에, 열심히 공모전에 참여하고 기업이나 단체가 후원하는 해외탐방 기회에 지원해서 해외여행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방학이면 해외로 떠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방학을 생계 걱정을 하는데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경험들로 대학 시절을 채운 덕분에 무엇을 하고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대학원이라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학석 연계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누구나 당장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여건에 살고 있는 건 아니기에 역시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는 미국으로 유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들리는 소문에 유학은 돈이 많이 든다고 했으므로 잠깐 고민을 했는데, 박사 유학은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박사과정 지원에 필요한 서류들과 시험성적을 준비했고, 그렇게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생들의 세계는 새로웠다. 박사과정 유학생들은 그 사람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경우도 많았지만, 학부 유학생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그 사람이 버스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갈 때 누군가는 벤츠를 운전해서 학교를 오갔다는 것 정도는 그 놀라움 중에서도 아주 미미한 부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 시작할 때쯤에 미국에서의 생활비를 더 많이 보태주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부모님을 두고 있었던 건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학위를 받은 이후, 구직 과정에서 경쟁은 팍팍했다. 하지만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부모님의 집이 있었으므로 그 사람은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당장 직업이 없어도 바로 굶어 죽는 것은 아니었기에 박사논문 심사를 1년 미룰 수 있었고, 꼬박 1년 간의 충실한 구직 활동을 통해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그 사람이 능력주의의 신화를 믿는다면 자신의 노력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마음속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만큼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 속마음은 은연중에 불쑥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반면, 그 사람이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인지한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끊임없이 구조화된 불평등 속에서 공고화 된 평가 체계와 기회 접근성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걸 또렷이 인지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에 대해서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문제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돌리는 담론들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능력주의는 공정함이 아니라 신화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능력주의가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자리 잡는다면 5년 뒤, 그리고 10년 뒤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의 공정함을 외치는 대신, 구조적 차별에 저항하는 편을 선택한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달라질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내가 결국 하나의 세상에서 살게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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