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xt

[처음만 어렵지]

by bokyung


나의 구직활동을 이야기 해보자면,


몇 회사는 나의 경력단절기간을 제외하고도 15년에 이르는 연차 + 쓰고 읽게 하기도 귀찮아하는 이력서(이렇다면 대체 이력서 접수는 왜 하는 걸까...) 덕분에 아예 본선 진출도 하지 못했고


한 회사는 과제 내고 면접까지 갔지만, 보기 좋게 미끄러져버렸다

(지금도 너무 아까운 회사, 직무 - 그러나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갔더라도 또 번아웃이 발병했을 듯)


한 회사는 두번의 면접을 치뤘고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만약 붙는다면 면접이 한 차례 더 있음)


한 회사는 한달째 이력서를 수정하고 있다

(진짜. 가고 싶어서 열심히 쓰는건지, 가기 싫어서 이러는건지 모르겠다)

- 오늘은 꼭 다 끝내고 '창밖은 겨울' 모임에 출근해야지 생각하는 중



마지막 회사는 주저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저 회사가 무척 빡센 회사 중에 하나기도 하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매우 자명하지만

C사에서도 고통받았던 내가, 새로운 게다가 빡세기로 유명한 저 회사에 가서 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도

가면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할 것 같아 약간 흥미 진진하기도 하다


여기서 고민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THe Next, AI가 이렇게 출몰하는 이 시점에-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은 로봇이 될 것이고 대부분의 이익은 빅테크에서 올테지,

보통의 사람들은 기본소득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 것인데, 대부분은 그들의 데이터를 팔아 먹고 살 것이다


피를 팔아 먹고 살던, 허삼관처럼

우리는 곧 내가 사는 상품이 뭔지, 내가 얼마 버는지, 내가 어떤 오늘 야식으로 주로 무엇을 주문했는지

이런 데이터를 팔아가면서 근근한 소비를 할 것이다

어쩌면 설국열차에서 기차를 계속 타고 있을까에 대한 대답도, 그들이 움직이는 데이터를 팔고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에 대한 댓가로 프로틴 가득한 양갱같은 바를 받는 것이 아닐까



저런 부류 외에도 크리에이터와 같은 1인기업 혹은 소규모 기업가인 부류도 있을텐데

나는 사실 이런 부류가 되기 위해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싶어, 퇴사를 진행한 것도 있었다

이렇게 의미없이 하루하루 무엇을 위해 하고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일들을

내가 왜 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괴로움이 가장 컸다


그런데, S&P500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보이고 로봇주들의 거침없는 상승랠리가 시작되고

그리고 내가 원래 몸담았던 리테일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중개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사실 리테일 Platform또한 중개상 중의 하나였으니까


퇴사를 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그리고 아이는 어떤 것들을 배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나의 모자람과 과함의 밸런스가 맞춰지지 않아, 내 아픔을 먼저 발견하고 이를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가 앓으셨던 10여년간 변하지 않는 세월이 너무 답답하여 공부하게 되었던 사주 공부를 통해

올해 병오년은 만물이 환하게 비춰지는 숨겨진 진실도 다 드러나는 해라고 들었다

반면에 너무 밝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해라고도 들었다


내게 딱 그런 해였다, 아직 반도 안 왔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내 방황과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또 나의 아픈 구석까지 샅샅이 보고 스스로 정신의학과에 가서 약을 지은 경험은 아직도 새롭다


앞으로 20년간 기술이 끝없이 발전하는, 기술이 세계를 재패하게 되는 해가 될 것이라는데

(이전 20년은 금융이 발전하는 해였다)

우리는, 그러니까 사람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에세이 모임을 통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비단 그냥 주저리 나의 이야기를 흩뿌려놓는 것도 있지만,

어떠한 상황에 대한 성찰과 Input(독서, 영화감상, 다른 사람과의 활동) 등을 통해서 깨닫거나 고민되는 바를 적고 이야기 나눈 활동들을 적어가는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습관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된 것이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


곧,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인간다움의 한 축이 될 것이고

남과 다른 나만의 취향을 갖는 다는 것은 초개인화시대에서 가장 비싼 매개체 또는 데이터가 될 것이다

알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비즈니스로 빚어낼지가 고민스럽다


Her에서 주인공은 어느 순간 귀에 꽂은 사만다와 연결을 중단하고, 인간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과연, 기술에 익숙해진 우리 모두는 그렇게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빅테크가 만드는 전략이라는 것 또한 나의 밥벌이이다

나는 그렇게 모든 문명의 이기를 끊고,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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