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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Dec 23. 2021

딸은 내 독일어 수업 파트너

 4학년 딸은 내 독일어 수업 파트너이다. 집에서 독일어 수업을 할 때, 원어민 발음이 필요하면 종종 딸을 불렀다. 잠시나마 어른의 발음을 교정하는 것이 뿌듯했던지, 대화문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가 아는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깜찍한 어린이다. 하루는 딸이 자랑스럽게 나에게 뭔가를 보여줬다. 자기가 만든 독일어 수업 자료란다. 같은 반 친구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독일어를 가르치고 피트니스를 배웠던 엄마와 엄마 친구를 보고 착안한 아이디어였나 보다. 자료를 보니 상당히 잘 만들었다. 4학년이 만든 자료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훌륭했다.


 독일 학교에 다니는 2학년 Y가 독일어를 어려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라 집에서 독일어 공부를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딸과 함께 그 아이를 가르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이 학교의 큰 언니, 오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꽤나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체 수업을 내가 진행하되, 딸아이가 맡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이끌도록 해주면 어떨까?' 나 혼자 독일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몇 살 많은 언니가 같이 가르치면 Y가 독일어를 훨씬 흥미 있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2학년 과외를 해 보고 싶은지 딸에게 물어봤다. 처음에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음, 한번 해 볼게” 한다. 그렇게 시작된 Y와의 독일어 과외는 벌써 7개월째다. 딸은 그 사이에 5학년이 되었다.

 

 딸과 나는 식탁에 앉아 같이 수업 준비를 한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언어의 4가지 기술이 모두 수업 내용에 들어가게 구성한다. 외국어를 배울 때 이 4가지 기술을 균형적으로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Y는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이 그러듯이 읽고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딸과 함께 Y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다. 독일 학교에서는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Y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짠다. 5학년 딸은 수업 계획에도 꽤 진지하다. 엄마의 생각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거침없이 제안한다. 나는 수업의 큰 틀을 짜면서 딸의 의견도 반영한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진지하다. 가르치는 아이도, 배우는 아이도 눈이 반짝거린다. 수줍은 Y와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여 이런저런 수다로 수업을 시작한다. 언니의 설명과 그리는 그림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두 명의 선생님이 붙어서 진행되는 1시간 수업이 힘들 만 한데 열심히 따라온다. 숙제도 꼬박꼬박 해 오는 아이가 기특하다. 얼마 전 Y의 어머니가 수업에 대한 의견을 알려주셨다. 여러 선생님과 과외를 해봤는데, Y가 이번처럼 열심히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배우러 오는 발걸음도 가볍다 했다. 다행이었다. 언어는 흥미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아이가 좋아한다면 된 거다. 우리 딸이 잘해서 수업 효과가 좋은 것 같다고 딸에게 얘기해줬다. 아이가 쑥쑥 자라도록 칭찬의 물을 줬다.


 "나를 변하게 할 계기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계기로 만들어 낼 변화의 크기이다"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을 생각해본다. 아이들은 참 다양하다.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각양각색이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도 시시때때로 바뀐다. 아이가 어떤 계기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양한 계기를 만들어 주고, 아이가 주체적으로 자기의 미래를 찾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아이의 삶을 정하지 않고, 아이의 장점을 알아봐 주고, 다양한 기회를 통해 본인의 미래를 구체화시킬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다. 엄마를 도와 독일어를 가르치는 아이, 독일 총리가 되기 위해 앙겔라 메르켈처럼 살이 쪄야 되겠다는 아이, 마인크래프트로 가상공간을 만들며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 이렇게 다양한 꿈을 꾸는 나의 딸이 앞으로 어떤 인생 그림을 그리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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