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할머니

by 열정의 개척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는 평소와 다른게 살뜰해 지셨다. 그동안 크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보다는 작은아버지를 편애 하셨다. 작은 아버지랑은 언제나 알콩달콩 하셨고, 아버지와는 언제나 원수처럼 싸우길 반복했다. 엄마가 양쪽의 모든 욕을 대신 받으셨다. 하지만 엄마가 죽고 나서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셨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는 왜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왜 아직도 사춘기 아이보다 못한 모습으로 평생을 사실까하는 생각이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한 적도 없고, 그런 상황이 닥치면 자신을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분노하며 다른 사람을 공격했다. 물론 아직도 풀지 못한 비밀이 있다.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부터 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고 어릴적 기억에 작은 도시의 모든 공무원은 할아버지가 다 자기들을 가르쳤다고 말 할 정도로 알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두 번의 결혼을 하셨다. 자녀는 총 2남 6녀를 두였다. 첫 번째 할머니랑 결혼을 하고 딸을 셋을 낳고 돌아가셨고 지금의 할머니도 딸을 셋 낳고 바로 작은 아버지를 막내로 낳으셨다. 미스테리는 그 사이에 낀 우리 아버지였다. 어떤 분들은 큰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았다고 말씀하시고, 어떤 분들은 지금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으셨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한번도 출생의 비밀을 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할머니와 함께 함구하고 있는 큰 고모들이었다. 큰고모들은 분명히 아버지 출생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 한번도 말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큰 고모는 할머니와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딸보다 3살 적은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다. 난 지금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그렇게 미움이 클 수 있다.


하여간 할머니가 아버지를 어릴때부터 미워한 것은 분명하다. 혹자는 자기 아들이 아니라서 할머니가 미워했다고 했고, 혹자는 할머니가 시집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 아들을 괴롭혔다는 말도 있었다. 하여간 아버지가 할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아버지의 행동들이 모두 용서가 될까?

여러번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이 있다고 모든 사람이 아버지처럼 사는건 아니다. 자기의 삶이 어렵다고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그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아버지는 그렇게 성인아이로 평생을 살았다.


할머니의 살뜰함은 얼마가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할머니도 쓰러지셨다. 처음 할머니가 쓰러지셔 뇌수술을 받으시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실 때 눈도 뜨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제 목소리 들으시면 제 손을 잡아 보세요”


할머니 있는 힘을 다해 내 손을 잡으셨다. 분명히 의식이 있으셨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할머니는 다시 눈을 뜨지 못하셨다. 그렇다고 돌악신 것도 아니셨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할머니는 식물인간처럼 누워 계셨다. 몇 번의 고비마다 의사들의 도움으로 숨을 붙잡고 계셨다.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고, 세달이 가는 동안 중환자실 비용과 수술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할아버지는 당시에는 볼 수 없는 교육열로 고모들을 키우셨다. 이미 은퇴하여 노후를 즐기고 있는 고모들은 자신의 친엄마도 아닌 사람을 위해 병원비를 지불하셨다. 몇 천만원이 한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여러번이 반복되니 다들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년쯤 지났을 때 이제 아버지도 입원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셨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날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병원비 구해오라’는 말이겠구나 싶었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다른걸 요구하셨다.

“야. 할머니가 저렇게 힘드시니 장손인 니가 이제 할머니 더 치료할지 말지 고모들에게 가서 결정하고 의사에게 말해라"


'치사한 인가'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을때는 분명히 ’니가 아들이니 결정해라‘라고 해 놓고, 이제와서는 나보고 장손이니 결정하란다. 정말 어느 순간에도 어른의 모습은 없구나. 여전히 성인아이로 살아가고 있구나. 고모들에게 가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할머니 연명치료를 그만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치료비를 모두 부담했던 큰 고모들이 모두 긍정의 수긍을 하자, 작은 고모들과 작은 아버지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


"일년 하셨으면 다들 효자세요. 저는 한달밖에 못했어요"

조카인 내가 고모들과 작은 아버지에게 위로아닌 통한의 한마디를 했다. 작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없는건 똑같이 슬프겠죠"


그렇게 나는 엄마에 이어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의사에게 가서 말했다.


"1년이나 하셨어요. 대단하셨습니다."


사실 할머니의 치료는 더 이상 의미없는 것으로 한참전부터 의사에게 고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고모들, 작은아버지에게 내가 겪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할만큼 했다는 마음을 주고 싶었다. 우리 엄마에게 못 해 매일밤마다 후회하던 모습을 경험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아버지의 치매가 심해지고 어느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니, 고모들이 모시고 있니 작은 아버지가 모시고 있니?"

"아버지 할머니 이미 20년전에 돌아가셨어요.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1년이상 치료 받다가 지금은 공원묘지에 계십니다."


"”아. 할머니가 죽었어"


아버지는 할머니가 죽은 사실을 또 잊을 것이다.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할머니가 죽은 것도 모르니 매일밤 마음이 아프지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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