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치매 치료를 15년간 받으시면서 잘 버틴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병세가 심각함을 깨닫게 된 것은 한 마디의 질문 때문이었다.
“너 엄마는 어디에 있니? 엄마랑은 연락하고 지내니?”
엄마가 돌아가신지 25년이 지났다.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다가 내연녀가 다른 사람에게 부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쓰러져 한 달을 버티지 못하셨다. 그렇게 돌아가신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돌아가셨어요”
“이혼해서 따로 사는 게 아니라?”
“네. 이미 돌아가신지 25년 지났어요”
“자살했니?”
자살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지금 옆에 있는 내연녀 데리고 들어오셔서 충격으로 쓰러지셨어요.’ 그렇게 말해야 통쾌할 것 같지만, 싫었다. 25년이나 가두었던 감정이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년간은 우울증이 있었다. 누구에게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았다. 그때 찐 20kg의 살이 아직도 그대로다.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쓰러지고 바로 돌아가셨어요”
“어디에 모셨니?”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다 같이 모셨어요. 할아버지도 다시 화장해서 할머니 계신 곳으로 모시고 어머니도 그 곳으로 모셨어요.”
“난 이혼한 줄 알았다. 그래도 너는 연락하고 사는 줄 알았지”
아버지의 기억은 어디까지 사라졌을까?
아버지의 기억은 현재를 기준으로 최근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치매 초기에는 방금 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에게 한 시간 동안 열 번도 넘게 몇 학년인지 물으셨다. 그렇게 사라진 기억 때문에 아버지의 현재는 25년전으로 옮겨 졌다.
집으로 향해 운전하며 치매는 참 오묘한 질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날 때 지금이 어디고, 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은 누구고, 자신의 얼굴은 왜 이런지 하는 생각을 할까? 나름 자신의 가족이 화목했던 때가 사라지고 옆에 자신이 만나던 내연녀가 버젓이 누워있고, 아들과 딸이 사라진 현실이 어떨까? 어떤 혼란함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갈까?
아버지는 그때가 그리울까?
나는 그 지옥 같던 때가 그래도 엄마가 있기에 너무나 가고 싶은데 아버지에게는 그때가 어떨까?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단 한번도 엄마 꿈을 꾼 적이 없다. 내가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기억의 속의 장면들이다. 그래서 난 기억이 사라질까봐 엄마 생각을 한다. 지금 생각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흐릿해질까봐 엄마 생각을 한다. 한 밤중 고열에 시달리던 아들을 엎고 뛰던 엄마의 등을 잊을 수 없고, 새벽 한 시까지 야간 자습하고 교복도 못 벗고 거실 쇼파에서 잠든 내 얼굴을 매만지던 엄마의 손길을 잊을 수 없고, 영장이 나온 날 내 손을 잡고 산책을 하던 엄마를 잊을 수는 없다.
차 안에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내가 만일 기억을 잃는다면 어떨까? 저 아이들과 행복하게 웃고, 밥 먹고, 노는게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인데 그게 사라지면 남는게 뭘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잊을 수 있어서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