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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히빈한스 Oct 21. 2021

경찰이 되다.

초심을되찾기 위한 글

'귀하의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내일 오전 9시 본사 건물 10층 대강당에서 신입사원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사오니, 늦지 않게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첨부파일을 참고하여......'   


참으로 단조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기계적으로 도서관에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멍한 눈빛으로 기업을 분석하며 주먹구구식으로 기업과 나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 문자 한 통으로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던 나의 생활에 제동이 걸렸음을 직감했다.      


이 문자메시지 하나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 번졌고, 아버지의 눈빛에는 아들을 바라보는 대견함이 묻어 있었다. 이는 각종 언론에서 끊임없이 토해내는 청년 취업난 소식 때문이리라.

당신의 아들이 대기업에 입사하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보이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느낌이 드는 순간도 잠시, 나는 역시나 보이지 않게 한숨을 쉬며 생각한다.     


이게 맞는 걸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복사기 소리,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벨과 타닥타닥 컴퓨터 자판이 눌러지는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한숨과 작은 탄성.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회사 내부의 모습이다.

누구 하나 한가해 보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묵묵히, 얼마간은 기계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익창출’이라는 기업의 숙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회사와 함께 보란 듯이 성장해 나갈 것이다. 단, 나를 제외하고.


전쟁 통에도 어미 등에 업혀 평화로이 낮잠을 자는 아이처럼 홀로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바로 옆 자리에서 기획안 작성에 몰두하던 사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다.     


“야, 신입!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고민 있어?”

“죄송합니다. 잠시 화장실 가서 세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 길로 회사 옥상으로 터덜터덜 올라온 나는 전에 하지 않았던 깊은 성찰에 빠진다.      

돌아보건대,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부모님께 있어 말썽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얌전하게 자란 착한 아들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만족할 만한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시절에는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묵묵히 해내며 전공과목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지 6개월이 흐른 지금, 나는 어느 대기업에 입사하여 이제 막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 순간,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살아온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사실을 직시한 지금이야말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시점임을 깨달았다.  


자크 라캉이 말했던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그의 말에 기대자면, 나는 자크 라캉이 말하는 전형적인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은 나 자신의 만족이 아닌 부모님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고 대학시절 과제를 열심히 했던 것은 교수님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대기업에 취업을 한 것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청년들에게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교수님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동시에 생각했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자고.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단 한 번도 입 밖에조차 내뱉지 못했던 나의 오랜 꿈을 꺼내 보자고 말이다.      


‘경찰이 되고 싶다.’     


일주일이 걸렸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취업난이 활개를 치고 있는 요즘, ‘대기업 사원’이라는 수식어가 가져다주는 장점은 쉬이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간직해 온 꿈을 이룬다는 미명 하에 고액의 연봉과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포기하는 것이,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청년의 치기 어린 도전이 되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나의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이토록 치열한 고민의 과정 속에서도 경찰 제복을 입은 나를 상상하며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나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나는 무서울 만큼 대담해졌고 고민은 끝이 났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께서도 나를 분명히 이해해주실 거라고 씁쓸한 자위를 하며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알음알음 모아두었던 돈으로 집 근처 독서실을 끊고,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고 책을 구입했다. 이 모든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속도감 있게 진행이 되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오는 딱 그만큼, 나의 눈빛도 전에 없이 또렷해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일은, 이와 같은 엄청난 결정을 부모님은 아직 모르신다는 것.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것은 대기업 합격소식에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들뜬 기분을 한 순간에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거니와 경찰 시험 합격 소식과 함께 그동안 나의 일탈에 대해서 멋지게 고백할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독서실로 향하여 독서실 구석자리에 정장을 걸어놓는 것이 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고백건대, 지독히도 외로운 시간이었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황홀감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지가 않았다.

생애 처음 보는 형사법 용어들은 생소하기만 했고 무엇보다 시험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 도중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산 빵과 우유를 들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자동차 한 대가 내 앞에 섰고 역시나 익숙한 실루엣의 누군가가 자동차 문을 열고 내린다.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     


멍하니 빵과 우유를 손에 꼭 쥔 채 아버지를 응시하던 내가 현실을 인식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아들, 공부는 잘 돼가니?”     


울컥,


그의 따뜻한 음성에 아무 말도 없이, 미처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 빵 조각의 일부를 입에 앙다문 채 청승맞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 역시도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당신들 두 분은 나의 큰 결정을 응원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공부하면 허기가 금방 찾아오니 잘 챙겨 먹으라며 5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신다. 마음 놓고 울 곳이 하나 없던 나는 지폐를 손에 꼭 쥔 채 독서실로 뛰어 올라와 소리 없이 꺽꺽대며 울었다.      


그날 이후 6개월. 내 인생에 있어 최고로 집중하고 노력했던 양질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경찰시험에 합격하였다.     

중앙경찰학교 교육과 실습기간을 거쳐 임용 8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1년 전의 내가 만들어 낸 긍정적인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부모님께서는 진심으로 아들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개인적으로는 조직 내에서 성장해 나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으며,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을 갈구하며 일군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나의 경찰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단어 하나를 평생 동안 묶어두고자 한다.     


‘초심(初心)’     


지난겨울, 신고처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경위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경찰시험에 합격하고 느꼈던 환희의 순간을 절대 잊지 마라.”     


평생을 경찰로 살아온 노경(老警)의 이 한마디가 가슴속을 파고들었고 그의 계급장 위에 소복이 쌓여 가는 눈꽃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초심만은 잃지 말자고.

정말 훌륭한 경찰이 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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