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3 뱀사골 할머니

마음의 상처

by Ichi H

언니가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동전을 짤랑짤랑 거리며 세고 있다. 꽤 많은 100원짜리와 간간이 500원도 보인다. 뭐야?


할머니가 치마저고리에서 복주머니를 빼더니 내 손에 동전 한 모금을 건네준다. 어딘가 찝찝하다.

언니는 내 눈치를 보더니 싫으면 달라고 한다. 얄미워 더 주기 싫다. 어쩌면 저리도 뻔뻔한지?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빵집을 들려 나오다 우연히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조선시대 양반 마님같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예쁜 얼굴 덕분인지, 미용실 이모들이나 떡집 아줌마들, 하물며 다방 이모들까지 호기심에 붙잡고 앉아떡도 주고, 차도 주고 그리고 노래도 듣고 사연을 듣고 나면 돈도 주면서 할머니와 수다를 뜬다.


이젠 시내도 못 가겠다. 창피하다. 왜 그렇게 창피했는지….. 야! 네 할머니 아냐? 시장에서 이모하나가 이런 질문을 하면 난 모른 척 지나간다. 모기같이 작고 짜증 나는 목소리로 “ 우리 할머니 아닌데..”


할머니는 그렇게 시장 이모님들에게 자기 얘기를 딱하게 늘어놓으면서 매일 구걸을 하신 거다. 그렇게 구걸하신 동전들을 모아 엄마에게 두부 한모라도 사 오고 고등어 생선도 사 오시고, 때론 언니에게 삥땅을 당하시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용돈도 챙겨주며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현하신 거다.


그런데 난 할머니를 철저히 처절히 모르는 사람으로 무시를 했다. 어린 마음에 구걸해 온 돈으로 산 두부조림과 생선구이를 먹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언니의 애교에 속아 동전주머니를 홀랑 홀랑 내어주는 할머니도 밉고 언니라는 사람이 참으로 창피했다. 동네나 시장을 한 바퀴 먼 길로 돌아서라도 시내에서 할머니를 마주치기 싫어 피해 다녔다.


엄마가 다급하게 언니의 방으로 들어온다. 새벽 2시경이다. 방에 불을 켜 더니 조용히 우리를 깨운다. 언니가 흐느낀다. 언니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할머니가 아프면 죽을 끓여주고 목욕을 하면 머리를 곱게 빗겨주곤 했다. 아마도 제일 힘들 것이다. 난 이 순간 너무 부끄러워 일부러 자는척하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우리 집에 오신 지 5년 후이다. 엄마는 잠결에 꿈을 꾸다가 할머니방으로 급하게 가서 보니 잠들며 고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전날밤 목욕도 하시고 참빗으로 머리도 곱게 빗고, 옷도 가지런히 개어 머리맡에 두었단다. 아직도 온기가 남았다고 언니는 할머니에게 인사하러 간다고 나를 부추긴다. 난 무섭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몸부림치며 가기 싫다고 엉엉하며 크게 소리치어 울었다.


한없이 흐느끼며 울었다. 엄마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하시며, “ 할머니가 복이 많으셔서 이렇게 손녀가 그리워하며 우네” 하신다.


할머니 방은 이제 나의 방이 되었다. 할머니의 온기를 느껴본다. 할머니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가셨다. 그냥 기다리며 나에게 무언으로 행동으로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 할머니의 사랑을 구걸로 해석한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내 스스로가 창피했다. 할머니,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