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의 문지기
5살 작은 체구 영이의 손이 철이의 귀를 아무리 잡아당겨도 그 손길을 따라 당겨가 준다. 영이가 앉으면 넓은 배를 툭하고 내어주며 옆에 앉아 기대어주며, 얼굴을 맞대면 쓰담쓰담 핥아준다. 영이가 바깥으로 나가려면 철이도 따라 나온다. 영이가 넘어질라 뒤에서 영이를 받쳐주며 듬직하게 뒤따라 나오면 동네 아이들은 길을 피해 준다.
철이는 독일 사냥개이다. 영이의 눈에 철이는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강아지다. 영이보다 한 뼘이 큰 키에 아빠만큼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고, 철이의 다리는 무쇠같이 세다. 하지만 철이는 2살짜리 셰프드.
아빠는 철이가 영이의 보디가드라고 하며 외출 시 쓰라며 작은 바구니를 만들어 철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럼 영이는 작은 바구니에 예쁜 돌도 모아 넣고, 꽃도 따서 부케도 넣고, 슈퍼에 가서 과자나 아이스크림도 사서 넣어 온다.
철이와 영이는 단짝이라 동네 어른들도 철이가 혼자면 궁금해하고, 영이가 혼자면 무슨 일 있나 걱정을 하신다. 철이가 빠지면 동네 친구들도 심심해한다. 철이가 가을 벼밭을 둘러싸고 뱅뱅 돌아 술래잡기를 하면 우리는 있는 힘껏 다해서 같이 놀아준다.
추운 겨울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개집에 들어가 철이와 몸의 온기를 느끼며 흐느끼다가 잠이 든다. 아빠와 엄마는 영이의 고집에 철이를 부엌구석 솥단지옆에 옮겼다. 이불을 깔고 솥단지의 온기에 둘이서 속닥거리며 엄마의 밥 짓는 모습을 보며 침을 흘린다. 영이가 고기 한 점이라도 슬쩍 빼돌리면 영이 한점, 철이 한점 하며 다음 고기를 어찌 뺄지 작당 모이를 한다.
철이는 사냥을 잘한다. 아빠와 겨울 사냥을 가면 신나게 뱅글뱅글 돌며 설레어한다. 가끔은 질투가 난다. 늠름하게 멧돼지나 노루를 잡고 돌아온다 그럴 땐 철이의 눈빛은 전사의 눈빛이다. 영이는 그런 철이를 보면 조금 섬뜩 두렵다가도, 반갑게 두 팔 벌려 가는 영이에게 듬직한 목을 내어주며 안겨준다.
철이는 영이의 첫사랑이며 단짝이다.
철이는 어느 날 사라졌다. 아빠는 철이가 이웃의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울먹이는 영이를 보며 아빠는 다른 강아지 또 올거라고 한다. 아빠는 영이의 첫사랑의 아픔을 모른다.
몇 년 후 방학 때 서울 이모집에서 과외를 받는다고 지내면서 새해 인사를 하러 큰집 할머니댁에 갔더니 철이는 그곳에 있다. 철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 철이다. 철이는 아빠가 서울의 친인척 집에 보낸 것이다.
나의 전사는 노장의 문지기가 되었다. 안녕 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