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Fate

Part one - Prophet

by Ichi H

새해 첫날이다. 이제 고3이 되는 영이는 친척 어른들이 오면 피하고 싶다. 뭐 하고 싶어?? 대학교는? 뭐 할 거야? 남자친구 있어? 대답을 머뭇거리면 느리다고, 아무 생각 없다고 핀잔을 듣는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 영이는 금세 지친다.


울보로 불리던 영이는 여동생이 없는 큰집 사촌오빠들의 이쁨을 받으며 예쁘게 자랐다. 서울에서 의대에 다니던 막내오빠는 영이를 유독 이뻐하여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이면 종종 서울 바람을 쐬어주곤 한다. 고3이 되기 전 이번 겨울에는 큰집 일본을 데려가겠다고 약속해 주어서 영이는 들뜬 마음으로 여권을 살피고 있었다.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본에서 큰어머님이 영이를 데리러 오셨다. 혼자가 아니다.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버선을 신고 검은 고무신을 신었는데 눈밭 위에 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중년 여인이 들어온다.


큰방에 모두들 둘러앉아 있다.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는 큰방에서 영이는 탈출을 할 수가 없다. 사실 그 아주머니와 눈빛을 마주치는데 소름이 끼친다. 추워서인지 아님 내마음을 훤히 다 들여볼 것 같은 눈빛이 무섭다. 호기심이 발동하니 자리를 뜰수가 없다.


영이의 눈은 텔레비전에 박혀있지만, 그녀의 귀는 뒤통수뒤에 달려 있다


보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이 엄마는 불교신자라며 운세 같은 거 안 본다고 한다. 거짓말! 영이는 엄마의 의도를 안다. 큰엄마에게 일부러 돈을 주고 저런 분을 모셔왔냐고 핀잔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어머 이런 늦은 밤에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이 말인즉슨, 굳이 이 야밤에 뭐 하러 내려왔나라고 돌려서 하는 말이다. 엄마의 말은 항상 속내가 은근히 드러나는 핀잔이다.


“ 어머 찬을 드릴 게 없어서 어쩌지요?’ 말인즉슨, 저녁밥 다 먹었으니 굳이 격식 차려 상 차리기 싫다는 말이다. 아빠는 옆에서 침묵으로 ‘ 흐음” 하며 한번 기침을 하고 엄마에게 말이 많다며 신호를 보낸다.


큰엄마는 미신을 잘 믿는다. 막내 오빠가 장가를 가고 큰손자가 시험을 보니 이리저리 겸사겸사 큰돈을 주고 아주 용하다는 보살님을 모셔온 거다. “소 데스네! 그런데 우리 아들 사주 좀 봐주시오. 네? “ 특유의 재일교포 억양으로 엄마의 말을 무시하며 큰엄마는 넌지시 뭐든지 못 알아들은 척 물 흐르듯이 넘기신다.


큰엄마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하얀 피부에 매일 미용실을 가는 사람처럼 머릿결도 부드럽고 우아하게 고데기로 잘 말아져 있다. 교육을 많이 받으신 분이라 그런지 말도 참 공손하게 하시는데, 그 내면에는 나쁜 여자가 숨어 있는 것인지 아들들이 데리고 오는 며느리들은 무조건 내쫓아 내는 능력자이시다. 그 우아한 서울 여자가 시골에서 서울로 사업한다고 상경한 나쁜 남자를 만나며 인생이 뒤죽박죽 바뀌게 된 분이시다.


영이는 항상 궁금했다. 가방끈도 짧은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남자를 만나 줄줄이 애낳고 사는 우리 엄마를 뭐 하러 매년 먼 길을 몇 번을 보러 오시는걸까?. “ 동생! 나 동생이 좋아” 하시면서 엄마의 자격지심을 항상 부추겨 주신다.


보살은 주문을 외우듯이 뭔가를 속삭이더니, 큰엄마에게 뭐라고 핀잔을 준다. 큰엄마는 결혼을 약속한 작은 며느리가 못마땅해 이리저리 불만이 많았는데, 역시나 보살이 뭐라고 얘기하니 인상을 찌푸린 신다.


“ 동생! 어쩌는가?” 큰엄마가 한마디 하면, 작은 엄마는 두 마디. “ 형님 신경 쓰지 말아요. 지금 결혼 약속 다 잡아 놓고 이게 무슨 소용이래요. 그래도 저분이 부처님을 모신다는데, 부처님 말씀만 믿으면 되기는 해요” 이 말인즉슨 나도 듣고 보니 미심쩍으니 한 번은 집고 가자 라는 말이다. 이것도 부처님 말씀일 수 있으니. 그럼 영이의 아빠는 “ 거참! “ 한마디 거든다. 여자들이 유별나다는 이야기다.


제발! 내 차례 안오길….. ” 저기요. 저기 앉아 있는 우리 딸 한번 봐주세요. 이제 고 3인데 뭘 할까요?” 엄마는 영이가 뜻대로 말을 듣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얘기하는 거다. 큰엄마도 거드신다. “소데스네. 영이 고3인데, 일본 가서 공부하면 좋을까요? 스고이! 네? 영이? 이번에 가서 큰엄마랑 살래?” 큰엄마는 어릴 때부터 영이를 일본으로 못 데려가 안달하신 분이다.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다시 한번 “ 에헴 “ 하시면 반기를 드신다.


엄마는 부처님을 모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왜 저러지? 영이는 텔레비전에 더 가까이 다가가며 어른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을 한다. 뒤통수에 종기가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