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Drifters

Part six 연인이 될 수 없는 인연

by Ichi H

벌써 늦은 점심시간이다. 피로를 풀고 파블로와 지아는 점심을 먹는다고 식당으로 향하며 손짓을 한다.


영주는 해먹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며 피로를 풀어보려고 한다. 돌아오면서 모두들 지쳐서 누구 하나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파블로와 지아도 영주와 카이의 어색함을 느꼈는지, 다들 입을 다물고 각자의 방갈로로 향했다.


영주는 책과 물병을 챙겨 바닷가 앞으로 나가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카이의 속삼임을 잊어보려 한다. 배는 고픈데 식당에 가서 카이의 얼굴을 마주치기가 싫다. 노곤함에 바위밑에 드러누워 낮잠을 청해 본다.


물속에서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온다. 일본말이다. ” 니혼진 데스까?”


” 이에, 칸코그진입니다 “ 영주는 어설픈 일본말로 대답해 본다


” 어! 한국분이세요?? “ 한국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훈이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을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국을 들렸다고 한다.


” 한국분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반갑네요 “ 훈이는 얼추 그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건장한 한국남자이다.


” 아, 네 그러게요” 영주는 피곤함과 귀찮음이 섞인 조금은 성의 없는 자기 말투에 훈이의 반응을 살핀다.

.

“ 혹시 저녁 같이 하실래요? 한국분을 뵈니 반갑네요” 영주는 망설인다.


“ 아, 네 전 아마도 조금 늦게 먹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면 다른 저 끝에 있는 방갈로 식당을 한번 가보실래요?” 영주는 카이를 피고하싶다.


훈이는 흔쾌히 동의하고 6시경에 그곳에서 보자고 한다. 훈이와의 저녁을 잘했다고 영주는 생각했다. 시원한 입담으로 여행경험을 틀어놓으며 훈이는 이미 태국 치앙마이를 들였다가 잠시 비치에서 여독을 풀고 바로 한국으로 간다고 한다. 영주에게 치앙마이의 숙소를 가르쳐 주며 꼭 가보라고 당부한다. 영주는 섬을 떠날 계획이 없다.


저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카이와 마주쳤다. 둘만의 어색한 몸짓에 훈이도 자리를 피해 준다

비치에 자리 잡은 큰 바위에 올라가 앉아본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밝은 보름달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두 사람은 앉아서 같은 달을 쳐다본다.


바위가 온돌처럼 기분 좋게 따뜻하다. 술도 한잔하고 배도 부르니 졸음이 온다. 영주가 팔을 벌려 누우니 카이도 옆에 자리 잡고 기대어 본다. 무슨 말을 할까? 카이도 묻지 않는다.


카이는 하루종일 영주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대답이 없는 영주의 마음이 안쓰럽다. 섭섭하기도 하다. 걱정이 된다. 그녀의 방갈로에 촛불도 꺼져 있고 저녁에 식당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영주가 한 동양남자와 저 멀리 비치에서 걸어온다.


아! 훈이다. 훈이는 아침에 커피 가지러 식당에 가서 본 친구다. 한국인 친구인데 참 씩씩하고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훈이가 왜 영주랑 있는 거야?


카이는 영주의 얼굴을 보니 섭섭함이 사라진다. 정말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영주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어깨너머로 스쳐 지나간다. 보름달이 원망스럽다. 너무 밝아 카이의 목덜미가 빨개지는 것이 들킬까 불안하다. 잠들었다. 그녀의 작은 숨소리가 카이를 꿈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한참을 따뜻한 바위를 등에 받치고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카이의 큰 팔뚝에 영주의 머리가 쉬 고있다. 보름달이 둘만을 비쳐주고 있는 것 같다.


“ 카이, 난 너에게 갈 수 없어.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카이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녀의 마음속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짐작은 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더 이상 대꾸를 못한다. “ 난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기다리는 게 너무 고통이라 다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결혼이 라니 미친 거 아냐?” 영주는 천천히 그의 어깨에서 멀어져 본다.


“ 같이 대만을 가주면 안 될까? 영주, 난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 너라면 너라면 난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농담이 아니야. 정말 진심이야. “ 카이는 마지막 설득을 해본다.


” 카이, 넌 3살이나 어리고, 어린 동생 같아. 이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보름달에 취해서 그래. 정신 차려! 그리고 난 조금 있으면 치앙마이로 갈 거야 “ 영주는 계획에 없던 치앙마이를 불쑥 꺼내버린다.


카이는 영주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영주를 잃고 싶지는 않다. 다시 한국으로 가면 만나 달라고 재차 묻는다.


영주는 다시 결심한다. 치앙마이로 가자. 미친년! 가슴이 아프다. 너무 힘들다. 이건 정말 계획에 없던 거야. 카이에게 연락처를 주며 서울에 오면 누나가 밥 사준다고 농담을 하며 달래준다.


돌아올 거라고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누군가가 한 그 말 한마디가 떠오르며 영주의 가슴에 송곳이 파고든다. 아니 절대 기다리지 않아. 영주는 앞으로 기다리는 사랑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다짐한다


카이는 영주와 같이 섬을 떠나기로 한다. 그는 계획대로 대만 대사관으로 향하고 영주는 방콕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치앙마이로 떠난다. 서로의 상처를 안고 “ 안녕“ 한마디만으로 기차역 승객들 사이로 사라진다.


뒤돌아 보지 않으련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다. 연인이 아닌 인연.





매거진의 이전글단편 - Drif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