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그가 행복했으면 한다.

by Goodmorning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마침내 다 읽었다. 192쪽의 그리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작가의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으로 서술된 참상과 희생자들의 죽음, 남겨진 자들의 고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져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덮고 펴고를 반복하며 열흘 만에 간신히 마쳤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희생된 약자에 대한 서사로 완성된 작가의 이런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늘 힘이 든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던 실낱같은 정보위에 눈 더미 같은 슬픔과 애절함이 쌓였다.


나보다 네 살 위인 막내 삼촌은 어려서부터 훤칠하니 잘생긴 데다 머리도 좋고 재주도 참 많았다. 할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할머니에게는 어느 자식보다도 애교 많고 의지 할 수 있는 막내아들이기도 했다.

그가 할머니의 삶의 의미이고 자랑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언니나 오빠가 없던 나는 방학 기간에는 항상 할머니 댁에 가서 지냈기에 이모, 삼촌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삼촌은 대입 공부를 하는 중에도 틈틈이 기타를 독학해 연주하였고 나에게 자주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로맨스’를 들려주었다.


기타 치는 그의 옆에 앉아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고 기타 줄이 빚어내는 청아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늘 감동받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삼촌은 섬세하고 감성적인 면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영향으로 성인이 된 후 내가 찾은 첫 공연은 클래식 기타 연주회였을 정도로 내 사춘기 시절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였다.


삼촌이 대학에 들어간 얼마 후부터였다. 할머니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것은.

할머니는 항상 얘가 대학 가서 이상한 친구를 만나 사람이 변했다고 한탄하셨다.


그는 거의 가출 상태였고 학교 대자보를 쓰고 연합시위대의 선봉에 서기도 했던 듯하다. 세상이 무너진 듯 할머니는 자리에 누우셨고 당장 막내를 데려오라고 난리가 나셨다. 할머니의 성화에 이모와 나는 삼촌을 찾아 학교며 달동네 판자촌으로 돌아다니고는 했었다. 그는 늘 옮겨 다녔기에 찾아다닐 때마다 다른 동네의 판자촌에 있었다.


볼 때마다 야위어 있었지만 푹 파인 광대뼈 위로 까만 보석이 박혀 있는 듯 눈빛만큼은 빛났다. 난 그런 삼촌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할머니의 걱정은 기우라고...


삼촌이 숨어있던 판자촌은 주로 재개발을 위해 철거된 집들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의 빈집들이었다. 집이라고는 해도 사람하나 겨우 누울 정도의 공간에 달랑 출입문만 있었다. 작은 한 채 한 채가 마치 닭장 속의 닭처럼 다닥다닥 모여 앉아 칙칙하고 거친 펠트천을 덧대어 모진 겨울 추위를 간신히 버텨 내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런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모와 나는 그곳의 모습에 놀라지 않은 척 먼저 그의 안색을 살펴본다. 혹시 어디 멍이라도 들었는지 상처는 없는지. 그런 후 집으로 가자고 들을 리 만무한 회유를 몇 번 한 뒤, 약간의 돈을 건네면 늘 겸연쩍게 그것을 받아 들었다. 찻길까지 바래다준다는 제의를 한사코 말리며 우리 둘은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길을 둘이서 손을 꼭 붙잡고 걸어 내려왔다. 무서워서 일부러 크게 소리 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쓸데없는 얘기도 하며.

그 집에서도 기타는 묵묵히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겨울이 지날 무렵, 큰삼촌은 드디어 거처를 수소문 한 끝에 막내 삼촌을 집으로 끌고 와서 서둘러 군대에 입대시켰다. 가족 모두의 염려와는 달리 그래도 무사히 제대는 했다. 하지만 이미 학사 경고를 두 번이나 받은 상태이어서 학교로 돌아간다고 해도 민주화운동에 발들이기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학생운동 이력이 있고 감시 대상자이었기에 복학하여 겨우 졸업을 하더라도 취업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큰삼촌은 그를 일본으로 유학 보냈지만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1년도 채 안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떠밀려 간 유학생활을 잘 해낼 리 만무했다. 삼촌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고, 사회와 타협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며 취직도 하지 않았다.


한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그는, 점차 술 마시는 횟수가 잦아졌고 술기운이 돌면 자신의 청춘을 쏟아부었던 행동을 정당화하고 처지를 합리화 하듯 이념 설득에 열심이었다. 더불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함께 민주화 운동에 몸 바쳤던 동료들의 사회적 출세를 비난했다.


사춘기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모습이 어는 순간부터 나는 점차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고 서로 얼굴을 안 본 지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은 중년의 새신랑이었다. 늦은 나이에 가정을 이루게 된 삼촌의 얼굴엔 쓸쓸하지만 행복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현재는 사회적 잣대로 평가한다면 변변치 않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방식대로 사랑한 이 나라, 그를 비롯한 수많은 청춘들의 빛났던 젊음 위에 버티고 서 있는 이 나라는, 그들이 바라고 원했던 이상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책을 보며 삼촌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그저 그가 행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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