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캐럴이 간단없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는 식사도 하고 싶고, 눈부시게 한껏 치장한 화려한 밤거리도 거닐고 싶기도 하지만 마음뿐이다. 유명 식당 예약사이트는 일찌감치 조기 마감되었고 밤거리는 추워서 나갈 엄두가 안 난다.
그래, 가까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이라도 먹자 하고 나간 주말 외출이었다.
사람이 많았지만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 안내를 받았다. 뷔페식이라 차분히 대화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메뉴 통일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각자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드나들며 음식 떠오느라 분주한 사이 옆 테이블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네 식구가 분명히 잘 ‘걸어서’ 입장했는데 잠시 후, 아빠가 초등학교 고학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업고 음식이 죽 늘어선 홀을 누비며 아이에게 보여주며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그 후, 아이는 구석자리의 엄마 옆에 앉혀졌고, 엄마가 이어폰 없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어주자 조용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아빠는 접시 한가득 음식을 담아와 아이 앞에 놓아준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무시할 정도의 소리도 아니었다. 핸드폰 소음 이외에도 아이는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작은 소리도 냈지만 엄마는 능숙하게 옆에서 제지시켰다.
그즈음부터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고개를 빼고 흘깃흘깃 쳐다보며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가족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어 그들의 대화가 잘 들렸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언니를 비롯해 부모는 모두 그 아이를 “애기야”로 부르며 살뜰히 챙겼다. 엄마는 아이 옆에 꼭 붙어서 밥을 먹여주고 언니와 아빠는 수시로 드나들며 음식을 나르기 바빴다. 표정은 모두 밝고 환했으며 발달이 조금 늦은 막내를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런 외식이 익숙한 듯 아마도 오랜 시간 축적된 그들의 노하우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적게 주는 방식으로 능숙하고 즐겁게 식사를 하는 듯 보였다.
그 테이블이 신경 쓰여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던 것 같다. 내 속은 여러 가지 생각에 소란스러웠다. 가족들의 표정이 밝은 것에 작은 충격을 받았던 건 내가 가진 편협한 편견 때문이었으리라. 그 편견이 깨지는 시원함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주어진 삶을 현명한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가족이 대단해 보였다.
타인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지고 굳건하게 결속력이 생긴 가족의 모습에 존경심이 우러났다.
한 토막의 모습만을 보고 속단했을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과 태도가 그 가족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상의 흐름에서 가끔 이렇게 마주치는 삶의 모습들은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