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세상
12월의 어느 날, 그날도 오늘처럼 하늘이 회색빛으로 잔뜩 심술을 부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하루 종일 맹렬하게 흩뿌려져 있고 해가 늦장을 부리는 겨울.
아침 추위 때문에 한껏 게을러진 몸을 일으키고 외숙모의 가게까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외숙모가 혼자 운영하는 작은 옷가게까지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도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3개월만 오전에 가게를 봐달라고 하신다. 겨울엔 새벽에 옷을 떼서 돌아오면 춥고 으슬으슬해 몇 시간만이라도 쉬었다 가게로 나오고 싶으시단다.
가게는 오전 10시에 열어 저녁 9시까지 운영하는데 나는 가게 문을 열고 오후 2시까지 봐주기로 한다.
그 당시,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어차피 오후에 그 근처 학원에 다닐 예정이라 잘됐다 싶었다.
가게는 8평이 조금 안 되는 크기이다. 벽 한 면에 큰 거울이 있고 사방으로 둘러서 옷이 걸려있다. 20대에서 4~50대까지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옷들이 구비되어 있고 가격대는 대부분 십만 원 이하이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가게 문을 열어 놓는 게 가장 큰 임무 같았다. 문을 연후 바닥과 거울을 닦는 간단한 청소만 하면 영업시작이다. 오후 1~2시까지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음악을 틀어 놓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추위에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대부분의 일과였다.
그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덩치 큰 외숙모가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떠들썩하게 들어오신다. 가져오신 간식을 함께 먹으며 오전 중에 있었던 판매실적이나 사적인 대화를 조금 한 후 퇴근이다.
어느새, 회색 빛 하늘에서 기어이 하얀 눈송이가 조용히도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세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이. 천천히 쓰다듬듯이.
11시 정도였는데 20대 중반의 아담한 두 여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딸랑하는 문소리와 함께.
둘은 친구사이인지 자매사이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고 친근해 보였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팔꿈치 부분을 가볍게 잡고 있었고 가만히 보니 다른 손엔 긴 막대를 쥐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예쁘게 세팅이 되어 있었고 화장을 한 고운 피부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검은 안경은 끼지 않았지만 거의 감겨 있는 눈을 계속 깜빡거리면 내 쪽을 향해 설명을 시작한다.
색이 곱고 보드라운 니트를 사고 싶은데요.
색이 곱다는 건 파스텔 색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 얼굴빛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순간 당황했고 사실 머릿속으로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자신은 보지 못하는데 까다롭게 옷을 고르는 모습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놀람을 뒤로한 채 촉감이 폭신한 파스텔 계열의 앙고라 니트를 권하자 손으로 만져보고 목둘레의 생김과 사이즈를 꼼꼼히 살폈다. 그러고는 촉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상체에 대보며 함께 온 사람과 나에게 색상이 잘 어울리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그녀가 어떤 색의 니트를 샀는지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들은 니트를 사들고 딸랑딸랑하는 문소리와 함께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그 후로도 한동안 그녀의 예쁘게 세팅된 머리와 고운 화장은 머릿속에 오래 각인되어 있었다. 스스로 했을까? 누군가 도움을 줬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얼마 전 다녀온 절에는 내면체험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동굴 같은 입구로 들어가 한쪽 벽에 허리 높이쯤 붙어 있는 봉만을 의지해 미로 같은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 반대편 출구로 나오는 체험이다.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도 없다. 뒷사람들이 계속 있고 반대편에는 그나마 의지할 만한 봉도 없다.
10분 정도 걸어 나오는 그 길이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한 시간은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어둠의 공포 때문에 한걸음조차 내딛고 나아가기 힘든 두려움이란 정말 무서웠다. 그 순간 뜬금없이 오래전 손님으로 방문했던 그녀가 떠올랐다.
눈이 안 보인다는 건 이런 상황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눈으로 보는 세상과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느 쪽 세상이 더 아름다울까.
어느새 눈이 그치고 길 위에 폭신하고 하얗게 쌓여있던 눈은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시꺼먼 웅덩이를 찍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