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엄마와 김치부침개

by Goodmorning

비는 나의 많은 흑역사를 보았다.


이십 대 때, 날것의 나의 감정은 날씨의 영향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특히, 비라도 내리는 날엔 고인 빗물만큼

푹 젖어 있기 일쑤였고, 그렇게 무거워진

감정은 어스름이 내리는 축축한 저녁엔

종로나 인사동의 포장마차나 주점으로

나를 이끌고는 했다.


포장마차의 지붕을 맞고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김치전에 막걸리는

내 젊음의 가장 만족스러운 호사였다.


밤의 빗소리는 심장을 뛰게 하고,

김치전은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둘을 진정시켰던 것은 술이었고.


당시, 사회와는 등진 채 살아가는

막내삼촌은 나의 술친구였고, 우린 항상

비 오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났다.

삼촌 때문에 인사동을 알게 되었고,

인사동은 곧 나의 최애 지역이 되었다.

그렇게 인사동은 나에게 술집 많은 곳!

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것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은 주말의

소개팅 자리였다.

회사 다닐 땐 거의 주말마다 소개팅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주 했다는 말은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고 한두 번만의 만남으로 끝났다는 말도 된다.

거래처 담당자의 소개로 만난 그와 나는

햇살 좋은 일요일 점심때쯤 종로에서

만났다.

간단히 자기소개 비슷한 걸 하고 함께

밥을 먹은 후, 그는 인사동으로 가자고

제의했다.

‘아! 낮술인가? 만나자마자?

뭐... 나쁠 거 없지’

속으로 생각하며 낮술 마실 생각에 조금은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그는 나를 한옥 외관의 아담한 가게로

이끌었고, 그곳은 작은 갤러리와 찻집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한낮의 인사동은 처음이었고 늘 주점만

다녔던 나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이 얼마나 큰 문화 차이인지...

마음속 생각을 말로 했었다면 대참사였을

상황이었다.

그와 더 만났는지 기억은 없지만

그때 받았던 당혹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나에게 비 오는 날은 의례 “술 마시는 날”이었기에 인사동은 비 오는 날 만나는

오랜 친구 같은 곳이었다.

그런 날은 또한, 오직 ""만이 나의 모든

추태를 지켜봤다.

술값이 모자라 친구를 불러내고,

동생이 데리러 오게 연락을 하고...


그럼에도 과묵한 비는 소문내지 않고,

나의 실수를 눈감아 주었다.

그리고 들어주었다.

엄마를 그리워했던 서글픈 마음을.




엄마는 모든 간식을 집에서 직접

만드셨다.

김치 부침개는 물론 카스텔라, 도넛,

딸기잼, 김치 만두, 설탕 솔솔 뿌린

누룽지 튀김, 타래과, 건빵 튀김, 화채,

부각 등등.


손도 커서 한 번 만들면 늘 한소쿠리

가득했다.

소쿠리 가득 있는 간식을 손으로

듬뿍 집어 들고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만든 추억들은 셀 수도 없다.

그것도 다 먹을 때쯤이면 떨어지지 않게

계속 다른 간식을 또 만들어 놓으셔서

집엔 항상 먹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맛있게

먹었던 건 김치 부침개이다.

주로 가장 파삭한 테두리 부분만을 골라

먹어서 너만 입이냐며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도 있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동네친구들에게 음식 해주는 것도 좋아하셨고 당연하게 우리 집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중·고등학생 때 하교 해 집에 오면 늘 동네 아주머니들로 왁자지껄했다.

화투 치시고 커피 마시고 부침개도

부쳐 드시며 거의 하루 종일 우리 집에 모여 계셨다.


그땐 그게 너무 싫었다.

사춘기였던 탓도 있겠지만 큰 소리로

수다 떨며 화투 치는 모습이 예민한

시기에 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구나 하교해 집에 들어오는 날 보시곤

다들 한 마디 씩 농을 건네시는 것도 너무

싫어서 골난 얼굴로 매번 답도 안 한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리곤 했다.

그러면서 스친 엄마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왠지 미안해하시고 내 눈치를 보시는 듯한.


중년이 된 지금도 가끔 엄마의 그때

표정이 생각나는 건 왜인지.

짧은 생을 사신 엄마가 즐거워했던 것에

차갑게 대했던 뒤늦은 후회인지도

모르겠다.

살갑지 못했고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비 오는 날이면

마음이 울기 시작하는 것일까.

오늘도 비가 내린다.

하늘은 컴컴한 게 벌써 초저녁 느낌이다.

부침개 반죽을 만들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