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을 꿈꾸는 자

집시 여행

by Goodmorning

“언니는 주부가 아닌 다른 삶을 산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묻는다.

“난, 집시처럼 살 거야. 세계를 돌아다니며 걸어서 온 세계를 발로 더듬고 각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돈 떨어지면 일해서 인접한 나라 갈 경비를 벌고.

노을 지는 이국의 바닷가에 앉아 보드라운 공기를 맞으며 와인을 마시고 초면인 사람과 풍경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어.”

어릴 적 우리 집엔 세계문학전집 50권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각국의 전래동화와 우화를 나라별로 짤막짤막하게 정리해 놓은 책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중국과 일본 동화를 가장 재미있게 여러 번 읽었다. 시냇물에 떠내려 온 복숭아 속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일본을 지켜낸 장군이 되는 그런 이야기(모모타로, 전래동화)들. 아기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복숭아가 떠내려 오는 시냇물을 상상하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꿈꾸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책 속에 나오는 이런 곳에 반드시 가 봐야지!’


역마살”이 있는지,

많은 나라를 가보기는 했다. 몇 곳에서는 거주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타국에서의 생활을 갈망한다. 어릴 적 꿈꾸었던 세계여행의 꿈에는 턱없이 부족해서인지 여전히 집시 같은 여행을 꿈꾼다.


그런 꿈에 비해 너무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 직장인이었고 주부인 삶.

한 때는 돈을 벌었고 아이를 키웠고 남편을 보좌하는 삶.

그나마 ‘시간이나 돈, 둘 중 하나만 충족되면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라는 말을 실행할 수 있는 삶이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았던 돈과 시간들.

가끔은 짚어본다. 여행을 하고 싶은 건지 떠나고 싶은 건지.

여행보다는 떠남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면 왜 그리 떠나고 싶었고 왜 이리 여전히 떠남을 갈망하는지.

떠나고 싶은 이유는 조금씩 변해왔지만 근본은 역시 발 디디고 있는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다시, 그럼 현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까지 가보자.

왜?라는 질문을 마주하면 어디선가 보았던,

“생각은 질병이다. 태어남은 기적이고, 삶은 축복이다.

그것 외의 삶에 대한 생각은 질병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것 때문일까?

난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너무 많은 생각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답을 찾을 수 없는 생각들.

꿈속에서조차 했던 수많은 질문들은 나보다 먼저 새벽을 맞는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 생각거리가 계속 생성되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책을 읽고 과거의 서사에서 답을 유추해 보고, 반면교사들로부터도 탐색해 보고.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답을 끌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 없는, 괴로움 없는, 힘듦 없는 공허함.

다시 떠남을 꿈꾼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무엇을 알고 싶은 건지.

여전히 손에 쥐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