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데친 브로콜리를 찍어 먹기 위해 초고추장을 만들 때면 오래전 있었던 아빠와의 실랑이가 떠오른다.
고추장에 식초, 설탕을 넣은 후 마지막에 참기름을 한 스푼 넣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아빠는 무조건 넣어야 한다! 나는 매콤, 새콤, 상큼하게 먹는 게 초고추장이다. 참기름은 그 맛을 헤친다.
그날, 부녀의 실랑이는 아빠의 "승"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후로도 이 작은
실랑이는 문득문득 기억을 비집고 올라왔다. 우리 부녀는 은근 똥고집이 닮아 있어 초고추장을 만들 때마다 나는 참기름을 넣지 않는 강단을 지켰고 그때마다 당시의 굴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부터 슬쩍슬쩍 넣는 유연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참기름이 들어가니 새콤ㆍ매콤에 고소함까지 더해져 감칠맛이 도는 것이었다. 지금은 참기름이 초고추장 레시피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참!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초고추장이 아니라 유머와 위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스로 유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뿌듯하게 느낀다. 그리고 꾸준히 그런 사람이고 싶다.
(똥고집뿐만 아니라 이것도 아빠를 닮긴 했다)
대화와 생활을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 사람!
만약, 일생 중 감정의 총량이 있다면 무거움과 진지함, 우울의 분량은 이미 많은 부분 소진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앞으로는 밝음과 웃음, 즐거움을 탕진할 시간이라고 느낀다.
그런 삶을 구현해 내기 위한 빠트릴 수 없는 요소가 대화의 "참기름" 역할을 하는 유머와 위트라고 확신한다.(이 문장을 쓰기 위해 앞에서 저렇게 긴 초고추장 이야기를 한 것이다)
매콤 시큼한 고추장 같은 삶에
감칠맛을 더해주 듯.
"일상의 시트콤화(化)"
내 삶의 모토다. 즐겁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한 중요하고 필수적인 재료 중
하나가 "유머와 위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머와 위트는 어떻게 다른 거지?
같은 거 아닌가?
단어 찾기 좋아하는 성향이 또 발동했다.
유머 ;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
위트 ; 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다음에서 검색해 보니 이렇게 명쾌한
문장으로 정리해 놓았다.
"유머는 가슴으로 위트는 머리로"
아하! 머리에서 탄성의 종이 울린다.
민망하거나 난감한 상황 또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구사되는 유머와 위트는 분위기 전환뿐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구제하는 역할까지 한다.
또한 힘든 삶을 겪어낸 후 훈장처럼 얻어 낸 지혜가 위트에 섞인다면 농담을 너머
감동까지 자아낼 수 있다.
따뜻한 마음 위에서 구사된 이런 언어유희는 자칫 불행의 전시장으로 빠질 수 있는 삶의 경로를 바꿔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한 바탕 웃고 났는데 디스 당한 듯 한 찜찜함이 감정을 찐득하게 하는 경우도 있기에 유머가 조롱이 되지 않도록 선을 넘지 않는 쎈스는 필수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개그맨들은 모두 천재임에 틀림없다.
유머와 위트는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 슬랩스틱과 연기까지 "뭘 좋아할지 몰라 모두 준비했어" 같은 느낌으로 짧은 코너 속에 모든 것을 녹여서 보여주니.
"개그맨들 존경합니다!"
한 때, 개그맨을 꿈꾸었던 느닷없는
고백으로 오늘의 유머를 대신하고 싶다.
사진 ; 나였으면 좋겠는 오드리 헵번,
출처 ; 손가락만 기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