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 처음이야
싱가포르의 헤드헌터에게 이메일을 받고 화상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포지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계 소셜미디어 회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문맥을 통해 해당 회사가 미국계 소셜미디어 그룹 F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으며 독일계 의료기기 회사에서 전통적인 마케팅만 해본 저에게는 디지털 마케팅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면접을 통과한 후, 한국계 대기업 S사의 담당 사수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저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신 그분은 “한국 사람이 크려면 한국계 회사에 있어야 한다. 미국계 회사에 가서 얼마나 클 수 있겠나”라며 조언을 주셨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일했지만 저를 이렇게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로벌 기업에서 디지털 마케팅을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리며 새로운 길을 나섰습니다.
F사에 조인한 첫날,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싱가포르인 2명, 인도네시아인 2명, 한국인 2명으로 구성된 초기 멤버들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온라인 환경과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회사답게, 사무실 곳곳에 재미있는 문구와 창의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세일즈팀의 분들도 매우 스마트하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미국계 회사는 속도가 빠르구나. 이전 독일계 회사와는 전혀 다른 문화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성과와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젊은 인재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F사에서는 전 세계 대기업들이 겪는 광고 관련 도전과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툴을 배우고 온라인 광고의 예산 규모, 시즌별 광고 이벤트, 효과적인 콘텐츠, 정확한 타깃 설정, 온라인 광고 효과 분석 방법 등을 익혔습니다.
당시 F사에서는 'Dog Food'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직원에게 매월 약 250달러를 제공하고, 실제 광고를 진행해 보기를 권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툴을 사용해 보고, 광고의 Reach, Impression, Click Rate, Conversion Rate, Time Spent 등을 직접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프로젝트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한국 에이전트가 4명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함께 먹고, 퇴근 후에는 코리안 바비큐를 즐기며 좋은 친구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약 2년간 빠르게 배우고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 있음에도 이때 맺은 감사한 인연은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남편과 저는 ‘싱가포르를 떠나 유럽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독일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회사 동료들에게 밝혔는데요, 그중 한 독일인 동료가 독일 본사에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남편을 소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팀에 자리가 생겼고, 남편은 면접을 보고 합격하게 됩니다. 우리의 유럽행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계약서에 서명한 후, 저도 독일 본사에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자리에 지원하고 이력서를 돌리던 중, 남편의 팀 동료가 저를 다른 부서의 장에게 소개해주어 기업 홍보팀 내 디지털 마케팅팀 면접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다니던 독일계 회사는 회사 내부 프로세스가 굉장히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한국 지사에서 일할 때 선배들로부터 “(프로세스가 복잡한) 이곳에서 살아남으면 다른 어느 회사에 가서도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한국 지사와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에, 또 당시 디지털 마케팅 분야의 경력이 독일 본사에 취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인 부사장님, 독일인 팀장님, 그리고 인도인 매니저와 세 차례의 영어 면접, 다양한 영어 발음과 악센트를 놓치지 않으려 면접 내내 손에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017년 9월 취직이 확정되었어요.
‘내가 독일에서 일을 하게 되다니! 유럽에서 살게 되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남편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서로를 꼭 끌어안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싱가포르에서 남편과 둘이 가정을 이루었고, 다시 아들과 함께 셋이 독일로 이주를 하게 되었지요.
다음 화에서는 독일 정착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